귀가 긴 고양이, 키가 작은 고양이, 키가 큰 고양이는 모두 고양이이고 그들에게는 고양이의 신이 있다. 요정은 귀가 긴 사람, 난쟁이는 키가 작은 사람, 거인은 키가 큰 사람이지만 사람의 신은 없고 그들에게는 각각 요정의 신, 난쟁이의 신, 거인의 신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요정이기를 그만 둔 기사 자하르와 그의 소지품을 훔치려다 종자가 되어버린 비비의 여정을 그린 정통 판타지. '사람'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를 떡밥으로 사용하여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것에서 약간 이영도식 판타지 감성이 느껴진다.

글을 참 잘 쓴다. 문장과 전투씬의 묘사가 좋고 캐릭터 조형이 정말 뛰어나다. 일반인과 동떨어져있는 감성을 가진 자하르의 개성을 잘 묘사했고 종자인 비비와의 티키타카 유머도 재미있다.

다만 스토리가 노잼인게 너무 치명적인 단점. 특히 후반부에서 떡밥이 풀리면서 등장하는 최종보스와의 결전이 너무 밍밍했다. 캐릭터가 좋아서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모험 그 자체가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다 읽고 나서는 그냥 무난했다는 느낌. 그래도 캐릭터 조형이 좋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라 차기작을 기대해볼만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