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지 말 걸.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도망칠 걸.
최대한 멀리, 너를 위해.
그러나 나는 오만했다.
“사라져.”
그녀의 온몸에 검은 아지랑이가 휘감겼다. 검은빛은 신비로웠고, 섬뜩했고, 가슴이 저미도록 아름다웠다.
인간을 위협하는 수인과 괴수를 토벌한 영웅들이 세운 아우로스 왕국.
역적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태양족이자, 아우로스 왕족들을 죽이고자 하는 미르엘은 우연히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그녀를 만나게 된다.
미르엘은 잠시 깬 채로 누워 조용히 상황 파악에 힘썼다.
자신이 누운 동굴의 구조를, 자신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자의 윤곽을, 불빛이 물들어 황금처럼 빛나는 긴 은발을.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머리맡으로 살금살금 손을 뻗었다. 그곳엔 장검이 있었다. 마침내 조용히 검 손잡이를 움켜잡은 그가 벌떡 일어섰다.
미르엘의 검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눌렀다.
“너, 정체가 뭐야?”
미르엘은 추궁했다. 싸늘한 음성이었다.
녹색과 주황색이 다시 맞물렸다. 로아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로아나는 미르엘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목에 닿은 날붙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서러워하며. 금속의 감촉보다는 그의 차가운 눈빛이 더 아팠다.
“…나 인간 맞아.”
“어?”
“인간 맞다고. 그러니까 이 칼 좀 치워, 싸가지 없는 놈아.”
거대한 힘을 가진 열쇠와 이를 두고 얽히기 시작한 운명들.
두 사람의 위험하고 간절한 대서사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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