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못 하면서 뭐가 좋아

기억도 못 하면서 뭐가 좋아

접견실에 앉아 초조하게 그를 기다렸다.세영건설의 대표이사이자, K그룹 부회장의 첫째 아들, 권준희.11년 만에 다시 만난 애절한 나의 첫사랑이지만,우린 갑을 관계로 재회했다.그것도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은 채.“웬일이에요?”“다름이 아니고…….”“뭐 부탁하러 왔어요?”팔짱을 낀 채 웃으면서 묻는데 무슨 면접관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예전 모습은 어땠는지 묻기 시작했다.“그것뿐인가, 나에 대해 아는 거? 보는 눈이 하도 애틋해서 특별한 사이인 줄 알았더니.”“…….”“저는 집착이 아주 강해요. 원하는 것이 물건이든 물질이든,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에요. 이건 권씨 집안 내력이라 하더라고요. 절대 바뀔 수 없는. 근데 전혀 몰랐다는 얼굴이라 놀랍네요.”그는 당황하는 나와는 달리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무엇에 집착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요.”“그래요? 아닐 텐데?”“없었어요. 적어도 제가 볼 땐 그랬어요.”“내 집착의 대상, 그쪽이었을 텐데?”“…….”“나랑 잘래요?”“……뭐?”“너랑 자고 싶어서 이런 짓 한 건가? 그런 거로 하자. 나랑 한번 자자.”11년, 잊지 못한 그 추억들을 가슴속 수레에 넣고 힘들게 이고 다닌 시간이었다.그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난 뭉클해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붙들고 입을 열었다.“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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