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봐왔던 작가 검미성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음울한 찬란함. 작가 검미성의 작품을 읽다보면 가슴 한구석에 끈적하게 불쾌한 감정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하나 이러한 감정에도 해당 작가의 작품을 끝까지 보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빛을 바래지 않을 찬란하고 확고한 가치를 작품내내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작가의 전작 광기의 트롤랑, 망겜의 성기사, 게임4판타지 등에서 작품의 주인공들은 무력을 기준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물론 작 내에서 맞설 이가 존재치 않는 무적의 존재라거나 하진 않지만 적어도 작중 인물이 포함된 사회에서는 충분히 그 무력만으로도 주변인들이 경외할만한 일종의 '먼치킨' 캐릭터임을 부정할 순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작품 내에서 주인공들은 절대로 승승장구하지 못한다. 결과론적으로, 혹은 거시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항상 승리해왔고 결국엔 승리할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상황을 직접 맞이한 주인공은 거센 시련에 괴로워하고, 도망치고도 싶어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직접 겪는 시련은 무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당금의 장애물이 아닌 그들의 신념에게 계속해서 던져지는 질문이기에. 네가 선택한 신념은 그것이 맞나? 그 신념은 모두에게 옳은 것인가? 네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다른 이들에겐 부당한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텐데? 웹소설을 보는 많은 이들은 당연하게도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고 있다. 거기에 더해 당연하게도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며 작중 내 서술인물인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런 주인공에게 부당한 사회의 일면이 면전에 들이밀어졌을 때 주인공이 가진 능력을 이용하여 돌파하는 것틀 보고싶어할 것이다. 허나 작가 검미성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막말로 내앞에 서서 나를 향해 부당함을 토해내고 있는 누군가를 줘패버리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많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규범, 처벌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평판에 대한 고려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사회적 방파제들을 걷어내는 날 것의 상황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단 하나만이 존재하게된다. 바로 개인의 도덕적 잣대이다. 작가 검미성은 이런 상황을 곧잘 들이댄다. 내가 기중기와 비교되는 만부부당의 장사인데, 이세계에 남은 사실상 마지막 희망인데, 세계 곳곳을 초단위로 넘나들 수 있는 궁극의 살인병기인데 내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조그마한 쓰레기들을 당장에 쳐죽여버리지 않을 이유가 있나? 있다. 그것도 바로 내 안에. 작가의 이번 작품 21세기 반로환동전에서의 주인공은 120년을 산 도사이다. 정확하게는 모산파의 무공을 전수받고 도사로서의 몸과 마음가짐을 갈고 닦는, 반로환동을 거친 무공고수이다. 작품에서 인간의 한계 수명은 구체적으로 주어진다. 130년. 주인공은 반로환동을 거친 젊은 몸임에도 10년의 수명을 선고받은 일종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셈이다. 배경은 현대다. 다만 역사가 조금은 뒤틀려있다. 무공은 대중화가 되었다. 다만 내력을 쌓는 방식은 그렇지 못하다. 천만원, 억, 십억, 백억짜리 영약을 쳐먹고 내공을 잔뜩 부풀린 자들만, 혹은 그럴 수 있는 자들만이 무인, 그 중에서도 고수로 인정받는 것이다. 무림은 뒷세계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범죄세계다. 뒷골목 깡패나 마피아, 야쿠자들도 분명 존재는 하지만 무림의 일원들도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그들의 일부이기도 하고 일부가 곧 그들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죽음을 벗어나고자 한다. 바로 '신선'이 되는 방식으로. 이성과 통정하지 않으며, 정해진 식사만을 시행하고, 항상 선행과 악행을 저울질하여 스스로가 선에 가깝게 있게 하기 위해서 일종의 덕을 쌓는 것이다. 깡패와 다름없는 무림. 신선이 되기 위해 선행을 쌓고자 하는 주인공. 천문학적인 금액의 영약을 목구멍에 쑤셔 넣으며 경지를 뛰어넘는 '무공'이 처한 현실. 주인공은 음울하기 그지없는 사회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목표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댄다. 그것은 선행인지, 선도로 가는 과정인지, 하다못해 그것이 정말 선행이 맞는 것인지 모호하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검미성 작가의 맛을 좋아하는 이에게 주저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작품.
높은 평점 리뷰
지금까지 봐왔던 작가 검미성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음울한 찬란함. 작가 검미성의 작품을 읽다보면 가슴 한구석에 끈적하게 불쾌한 감정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하나 이러한 감정에도 해당 작가의 작품을 끝까지 보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빛을 바래지 않을 찬란하고 확고한 가치를 작품내내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작가의 전작 광기의 트롤랑, 망겜의 성기사, 게임4판타지 등에서 작품의 주인공들은 무력을 기준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물론 작 내에서 맞설 이가 존재치 않는 무적의 존재라거나 하진 않지만 적어도 작중 인물이 포함된 사회에서는 충분히 그 무력만으로도 주변인들이 경외할만한 일종의 '먼치킨' 캐릭터임을 부정할 순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작품 내에서 주인공들은 절대로 승승장구하지 못한다. 결과론적으로, 혹은 거시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항상 승리해왔고 결국엔 승리할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상황을 직접 맞이한 주인공은 거센 시련에 괴로워하고, 도망치고도 싶어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직접 겪는 시련은 무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당금의 장애물이 아닌 그들의 신념에게 계속해서 던져지는 질문이기에. 네가 선택한 신념은 그것이 맞나? 그 신념은 모두에게 옳은 것인가? 네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다른 이들에겐 부당한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텐데? 웹소설을 보는 많은 이들은 당연하게도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고 있다. 거기에 더해 당연하게도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며 작중 내 서술인물인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런 주인공에게 부당한 사회의 일면이 면전에 들이밀어졌을 때 주인공이 가진 능력을 이용하여 돌파하는 것틀 보고싶어할 것이다. 허나 작가 검미성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막말로 내앞에 서서 나를 향해 부당함을 토해내고 있는 누군가를 줘패버리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많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규범, 처벌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평판에 대한 고려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사회적 방파제들을 걷어내는 날 것의 상황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은 단 하나만이 존재하게된다. 바로 개인의 도덕적 잣대이다. 작가 검미성은 이런 상황을 곧잘 들이댄다. 내가 기중기와 비교되는 만부부당의 장사인데, 이세계에 남은 사실상 마지막 희망인데, 세계 곳곳을 초단위로 넘나들 수 있는 궁극의 살인병기인데 내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조그마한 쓰레기들을 당장에 쳐죽여버리지 않을 이유가 있나? 있다. 그것도 바로 내 안에. 작가의 이번 작품 21세기 반로환동전에서의 주인공은 120년을 산 도사이다. 정확하게는 모산파의 무공을 전수받고 도사로서의 몸과 마음가짐을 갈고 닦는, 반로환동을 거친 무공고수이다. 작품에서 인간의 한계 수명은 구체적으로 주어진다. 130년. 주인공은 반로환동을 거친 젊은 몸임에도 10년의 수명을 선고받은 일종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있는 셈이다. 배경은 현대다. 다만 역사가 조금은 뒤틀려있다. 무공은 대중화가 되었다. 다만 내력을 쌓는 방식은 그렇지 못하다. 천만원, 억, 십억, 백억짜리 영약을 쳐먹고 내공을 잔뜩 부풀린 자들만, 혹은 그럴 수 있는 자들만이 무인, 그 중에서도 고수로 인정받는 것이다. 무림은 뒷세계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범죄세계다. 뒷골목 깡패나 마피아, 야쿠자들도 분명 존재는 하지만 무림의 일원들도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그들의 일부이기도 하고 일부가 곧 그들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죽음을 벗어나고자 한다. 바로 '신선'이 되는 방식으로. 이성과 통정하지 않으며, 정해진 식사만을 시행하고, 항상 선행과 악행을 저울질하여 스스로가 선에 가깝게 있게 하기 위해서 일종의 덕을 쌓는 것이다. 깡패와 다름없는 무림. 신선이 되기 위해 선행을 쌓고자 하는 주인공. 천문학적인 금액의 영약을 목구멍에 쑤셔 넣으며 경지를 뛰어넘는 '무공'이 처한 현실. 주인공은 음울하기 그지없는 사회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목표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댄다. 그것은 선행인지, 선도로 가는 과정인지, 하다못해 그것이 정말 선행이 맞는 것인지 모호하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검미성 작가의 맛을 좋아하는 이에게 주저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작품.
다른 작품에 비하면 이 작품은 쓰고 싶었던 마음은 넘쳤는데, 글을 쓰는 도중에 열정이 식어버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