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간 집에는 남편이 없었다. '미안해요.' 그의 필체로 적힌 작은 쪽지만 있었을 뿐. 조그만 종이조각을 품에 품고 그를 찾아 나섰다. 내가 본 그는 이런 식으로 사라질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니 사실 그를 찾고 싶었다. 나를 보고 웃어 주던 다정한 미소가, 상냥하게 휘어지던 반짝이는 눈빛이. 거짓말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으니까. "......렌더블?" "공작, 그게 무슨 말인가. 걔는 내 아들인 1황자 에리스일세." "네......?" 하지만 마주하게 된 진실은 그녀의 예상을 뒤흔들었다. 황제의 애정을 독차지한 황자. 황궁을 탈출하려는 이단아. 그가 자신의 남편의 정체였다니. "실비아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난 진심이었어요." "......믿을게요. 믿어요, 에리스." 진짜 이름으로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와 자신을 노리는 끊이지 않는 위협이 자꾸만 목을 옥죄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를 지킬 거예요." 빛으로 가득한 그의 눈매를 볼 때마다 다짐했다. 꼭 그와 안온에 도달하겠다고. 과연, 우리는 행복에 닿을 수 있을까?
읽고 있던 로판 속 이름도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에 빙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제 직속의 기사단장이자 공작가의 막내딸인 재력 빵빵, 지위 빵빵, 외모 빵빵 도저히 나무랄 데 없는 엑스트라에. 이런 인물에 빙의한 것을 꽤 만족해하며 평화롭게 기사단장으로서 살아가던 나에게 이변을 일으킨 건 황궁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웬 남자아이 한 명이 날 쫓아오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엄마." "응......?" "엄마! 왜 나 모르는 척 해!" 죄송하지만 난 네 엄마가 아닌데요...? 내가 이 애 엄마랑 판박이라고? 심지어 얘 아빠는 소설 속 악명 높은 흑막 대공이라고?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