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돌아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고향이라는 곳이 마음의 안식처도 아니었고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도 연락이 끊기거나 타지로 간 지 오래라 특별한 의미가 남아 있지도 않았으니까.이사 당일, 혜리는 어쩐지 낯이 익은 남자를 마주친다. 누구였지.남자의 얼굴이 정말 익숙했다. 아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남승현….”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나자, 승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시간이라는 게 무섭긴 무서웠다.절대 잊을 수 없는 친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잊은 것을 보면 말이다.“너… 승현이 맞지?”그 말에 남자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멀거니 쳐다보는 눈에 망설임이 가득했다.“나 혜리야. 기억 안 나?”그 말에 남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쓰게 웃었다.“내가 너를 어떻게 잊겠어.”Copyrightⓒ2023 님도르신 & 바니앤드래곤Cover Design Copyrightⓒ2023 PIZZAAll rights reserved.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다.집안과 약혼자,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희연은생사의 기로에서 그를 살린 낯선 남자에게 붙잡히고 만다.“왜 하필 내 눈에 띄어가지고. 뒤지려면 혼자 조용히 뒤지든가!”“누가 구해 달랬어?”“너 진짜 뒤지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그렇게 희연은 저를 구한 이규를 쫓아가 그의 삶 속에 몸을 던진다.곰팡이 슨 반지하 방, 조폭의 유흥거리로 링 위에서 싸움질을 하며 살아온 밑바닥 인생.순진한 이규는 거칠게 희연을 밀어내면서도 차마 내치지는 못한다.“뒤지려고 할 때 그냥 놔뒀어야 하는데.”“이미 구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네가 나 새까만 바다에서 구해 준 것처럼 나도 너 끌어내 줄게.”죽고 싶은 여자와 살고 싶은 남자.티격태격하며 내디딘 두 사람의 동거가 서로를 구하기 시작하는데….*“이규야. 죽지 마.”싸우지 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당장 그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었고, 그걸로 평생을 살았고…. 희연은 아직 그에게 평범하게 사는 걸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못했으니까. 그의 까만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이건 무슨 장난인데. 왜 떠나는 것처럼 말하는데.”이규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그의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내가 선택한 거니까 안 놓겠다며.”변명할 말 따윈 없었다. 그렇게 말한 것도, 약속한 것도 전부 그녀였으니까.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떠나겠다고 멋대로 말하다니.“내가 너 구해 줬잖아!”이규가 악을 쓰듯 외쳤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희연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그의 어깨를 세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