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개인이 밟아나간 작품 활동의 궤적을 곧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내며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바꾼 작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장편소설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행은 원하는 대로 시를 쓸 수 없는 상황, “희망과 꿈 없이 살아가는 법”(64쪽)을 새롭게 배워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를 붙들려 하지만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시를 향한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개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압도적이라면 그 마음은 끝내 좌절되고야 마는 걸까. 속수무책의 현실 앞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버려지지 않는 마음,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일곱 해의 마지막』은 이러한 물음을 안고 한 명의 시민이자 작가로서 어두운 한 시절을 통과해온 끝에 마침내 김연수가 내놓은 대답처럼 보인다.
<개정판 | 밤은 노래한다>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이상의 삶과 그 비밀을 추적해들어감으로써 ‘지적 소설의 한 장을 열어젖혔다’는 평을 받은 『꾿빠이, 이상』(2001), 공식적인 역사 기술(記述)이 지워낸 개별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소설의 인식론적 깊이를 심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을 잇는 김연수의 세번째 역사소설 『밤은 노래한다』(2008)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되었다. 역사의 소용돌이로부터 한 발 떨어진 채 일상을 살아가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연인이 죽기 직전 보내온 한 장의 편지를 받으면서 역사의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밤은 노래한다』는 우리를 1930년대 초반 북간도로 이끈다. 그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우리는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 즉 ‘민생단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된 고귀한 자들은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도 이 세계 전부를 얻은 셈이에요.” 고등공업학교 출신의 만철 측량기사인 김해연은 본사가 있는 대련에서 일하다 1932년 용정으로 파견을 오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명신여학교 선생으로 일하는 신여성 이정희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다. 그가 단단하게 발을 딛고 서 있는 세계 저편에는 혁명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건 청춘들이 있었다. 그것도 모른 채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는, 역사의 광풍 속에서 이정희가 나무에 목매달아 죽게 되면서 장막 너머에 있던 그 거대한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제가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서 잘 안 써주는 사람들이에요. 실패한 사람들. 그게 소설가가 가져야 될 사람들이죠. 실패한 사람들이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처참하게 무너진 사람들에게 끌려요. 끌리니까 자꾸 그쪽을 보게 되고. 그들이 끌리는 이유는, 그들의 삶을 납득할 수 있다면 내 삶도 납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삶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계속 분노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뭐 이렇게 만들어놓은 인생들이 있는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가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실패를 겪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생각을 하니 역사에 많이 관심이 가죠. 해답은 아니지만 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가, 혹시 그게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희망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고민해보는 거예요. _김연수 ‘조선혁명을 위해 싸우려면 먼저 중국혁명부터 이루어내야 한다’는, 시작부터 모순된 조건 아래에서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들었던 젊은이들. 그러다 끝내 혁명의 숭고한 뜻을 품은 동지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고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그 처참한 사건을 소설로 담아내면서 김연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갔으나 끝내 그것이 실패하면서 단순히 통계적 수치로만 남게 된 사람들 각각의 고유한 면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이는 1930년대 초반 북간도라는 특수한 상황에만 갇히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김해연’들에게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 역설적으로 얻게 되는 진실’이 있다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밤은 노래한다』는 1932년 동만주에서 벌어진 소위 민생단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름 끼치는 이야기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실록처럼 읽힌다. 역사의 어둠 속에 묻힌 진실을 찾아 거기 빛을 들이댄 작가의 꼼꼼한 취재와 용기와 열정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왜 이런 어려운 일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을까.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람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왜 아직도 계속되는 걸까. 애국이 뭐기에 인간애 없이 조국을 사랑한다고 날칠 수 있단 말인가. 어둠을 걷어내는 건 빛이고 빛은 앎일 터. 역사소설은 경험자가 쓰는 게 아니라 훗날 누군가에 의해 상상됨으로써 쓰일 것이다. 상상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작가가 기울인 노고 속엔 사랑까지 포함돼 있다는 게 도처에서 느껴진다. _박완서(소설가) 본문에서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데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옙스크 같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 모든 낯선 감각의 경험들이 사랑의 거의 전부다. 그 종이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라고 시작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여자의 필체로. 뭔가 결심하듯이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 그러니까 정희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이죠. 진실을 알게 된 고귀한 자들은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도 이 세계 전부를 얻은 셈이에요.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을 준 그 인간이 소멸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격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육친보다 더한 사랑을 퍼붓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곧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곧 그 사람이 죽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곳,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미친듯이 남은 정을 쏟아붓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유격구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정판 |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스스로 노력해서 절망에 이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매혹되는 존재들도 그런 사람들이구요. 저는 지도 보는 걸 좋아해요. 지도제작자들은 땅을 그대로 흉내내 지도를 만들지만 지도를 완성하는 순간 길이 새로 생기거나 강줄기나 바뀔 테니 그 지도는 완벽하지 않게 되죠. 지도를 그리기 전까지는 완벽했는데, 완성하는 순간 거짓이 되는 게 지도제작자의 비애예요. 그 비애에 아주 깊이 공감합니다. (웃음) 완성하는 순간, 실제의 지형과는 달라지므로 지도제작자는 다시 지도를 만들어야만 하는 운명이죠. 그게 작가의 운명과 꽤 닮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허무주의라고 할 수는 없죠. 허무주의에 빠진 주인공들이 기를 쓰고 노력해 절망과 대면할 리는 없으니까요. _김연수,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좌담 중에서 “응축미 있는 구성과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 거기에 예상을 뒤엎는 결말 처리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제1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의 세번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되었다.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진실도 말해질 수 없다’일 것이다. 이 세계는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라는 작가적 자의식은, 그러나 허무주의에 쉽게 안착하는 대신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지점까지 우리를 밀어붙인다. 요컨대 말해질 수 있는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서 멈춰 서버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야기의 끝의 끝까지 가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절망’이란 허무주의에서 이끌어낸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된다.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속 ‘나’에 따르면, 사람들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어두운 구멍’이 존재하고, 그 구멍의 실체까지 이해하겠다는 건 결코 인간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무모한 열정이다. 때문에 그는, 남편이 모는 자동차만큼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세희에게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인간이라는 게 과연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인식 앞에서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총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개인적인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채 자살한 여자친구와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낭가파르바트라는 산에 오르는 ‘그’, 그리고 ‘그’가 남긴 노트를 통해 ‘그’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추측하는 ‘나’가 등장한다. 이 셋 중 그 누구의 마음 상태도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다만 우리는 ‘나’를 통해 ‘그’를, ‘그’를 통해 ‘그녀’에 대해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 지리를 따라가는 일의 지난함과 꼭 닮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이 이야기의 협곡을 간신히 헤치고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우리는 여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가 될 것이다. 처음의 그 의문에서 360도를 돌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눈으로 뒤덮인 험난한 산길을 조금씩 조금씩 오르며 이르게 된 지점이 처음 그 자리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두운 구멍’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일, 누군가가 남긴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일일 것이다. 김연수에 따르면 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타인/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이에 실패하는 것이 곧 사랑이다. 부단히 실패하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이 사랑의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알 수 없으며 말로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가능하지 않은 그 진실에 대해 알고자 하고 나아가 말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시도가 아닌가?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를 알면서도 낮은 포복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는 김연수 소설의 말길을 따라 그 어둠 속 진실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하나씩 하나씩 열린다는 점이다. _‘대산문학상 심사평’에서 본문에서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의 꿈속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일들이 그대로 꿈속으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속에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_「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우리가 그 품안에 안겨 있을 때는 그 어떤 이해도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어둠에 본능적으로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이율배반적인 애착에 대해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본다. 환한 빛, 따뜻한 낮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서늘한 밤을 향해 우리가 지니는 애착에 대해. _「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전쟁터에서 세 발의 총성을 들을 때,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란 하나도 없어. 그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거나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뿐이지. 한 번만이라도 온몸으로 다른 인간을 사랑해봤다면, 마음에 그림 따위가 그려질 겨를은 없는 거야. 그저 움직일 뿐이지. 뿌넝숴. 운명이 드러나는 순간에 언어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야. _「뿌넝숴不能說」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몸의 온기로 따뜻해진 이불은 다시 그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깊은 곳 어딘가에는 벌거벗은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밤이 있게 마련이다. _「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개정판 | 꾿빠이, 이상> 1999년이 되자, 나는 이상에 대해서 뭔가 쓰고 싶어졌다. 그 글은 나중에 『꾿빠이, 이상』이라는 장편소설이 됐다. 그 소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나는 소설가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_김연수(한겨레 칼럼 「소녀잡지 속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시오?」 중에서) 김연수가 등단할 때부터 마음에 품은 다음의 문장에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즉, ‘오빠의 데드마스크는 동경대학 부속병원 유학생들이 떠놓은 것을 어떤 친구가 국내로 가져와 어머니께까지 보인 일이 있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라는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의 회상으로부터 말이다. 이상의 유고소설인 「단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 ‘연衍’에서 그 필명을 따올 정도로 김연수의 문학적 출발점은 이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만큼 이상은 김연수에게 있어 중요한 화두였고 그렇기 때문에 김연수는 이상의 데드마스크와 관련한 소설을 그의 문학적 연륜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 즉 그가 가장 마지막에 쓸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나긴 암흑기를 지나는 동안 걸려온 한 통의 장편 청탁 전화는, 어쩌면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그 상황에서 그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15매씩 꾸준히 소설을 써내려간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 소설이 되리라 생각했던, 바로 『꾿빠이, 이상』이다. 다가오는 4월 17일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키는 작가 이상의 기일이다. 기일을 맞아 문학동네는 김연수 문학의 분기점이 된 『꾿빠이, 이상』과 함께,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제1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민생단 사건’을 바탕으로 1930년대 청춘들의 모습을 담아낸 『밤은 노래한다』를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인다. 빈틈의 영역, 비밀의 힘만이 우리를 솟구치게 한다.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총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꾿빠이, 이상』은 각각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술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첫번째 장인 <데드마스크>는 잡지사에 다니는 기자 김연화가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라진 이상의 데드마스크가 자신에게 있다면서, 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이해 기자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니 그 현장에 찾아오라는 서혁수의 전화가 바로 그것이다. 전화가 걸려온 그날은 사랑하는 여자 정희의 남편이 회사로 찾아와, ‘정희는 당신과 나 둘 모두를 사랑하는데, 당신은 정희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던진 날이기도 하다. 정희의 말 중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김연화는 우리 문학사상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문학적 이력을 시작한 이상의 삶 그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간다. 이상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분분했던 그 상반된 태도―‘미친놈의 잠꼬대냐’부터 일백 퍼센트의 ‘불멸의 작품’이라는 평까지―는 우리에게 진실이란 논리나 열정의 문제가 아닌, 다만 그 대상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진실 여부가 채택되는 믿음의 영역임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혁수의 형이자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인 서혁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두번째 장 <잃어버린 꽃>은 그가 이상 문학을 동경하며 이상과 비슷한 작품을 써오다, 마침내 이상의 삶마저 모방하며 그와 비슷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동경대학 부속병원 물류학과에서 죽어간 이상처럼, 동경대학에 찾아가 독약을 마시며 죽어가기 전 서혁민은 ‘오감도 시 제16호―실화’라는 제목의 시를 한 편 써내려간다. 이상이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 연작을 발표할 당시, 애초에 이 연작은 서른 편으로 구성된 것이었으나 독자들의 거센 항의로 연재 15회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발표되지 않은 나머지 작품 가운데 하나인 「오감도 시 제16호」가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인 서혁민에 의해 쓰이면서, 이상 문학은 다시 한번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재미 교포 출신의 이상 연구자인 피터 주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새>는 바로 이 「오감도 시 제16호」의 진위 여부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과 이 논쟁과 맞물리면서 진행되는 피터 주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양축으로 삼아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 명의 화자를 중심 삼아 이상의 삶과 문학적 이력, 그리고 그가 죽은 뒤 이루어진 수많은 연구들이 방대하게 교차되면서 우리가 몰랐던 어떤 진실이 드러나는 듯싶지만, 수많은 자료들에서 이끌어낸 사실들의 합이 곧 진실 그 자체일 수는 없듯이 자료들로는 가닿을 수 없는 빈틈의 영역에서 각자의 진실을 발견해내는 건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는 이상의 말처럼, 그 빈틈의 영역, 비밀의 힘만이 우리를 솟구치게 한다. 소설은 시인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무성한 수수께끼 차원의 이야기들을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예술가 소설은 아니다. 이상의 시구들, 개인사적 이야기들, 당대의 문학사적 풍경들을 모티프로 혹은 배경으로 하고 있되 역사 속에서 유실된 것들, 있으리라고 추정된 것들을 퍼즐게임 맞추듯 작가의 상상력으로 착색한다. 이 소설에서 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무서운 소설 「라쇼몽」과 그것을 원작으로 한 구로사와의 환상적인 영화 〈라쇼몽〉을 동시에 본 것 같은 복합적 감동을 받았다. 진짜와 가짜는 정말 있는 것일까, 원본은 있는 것인가 등의 구로사와적인,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적인 질문이 깔린 것이기도 했다. _김승희(시인, 소설가) 본문에서 인생의 다양한 일들 중 드물게 일어나는 일 하나가 절정에 다다른, 아주 좋은 시기였다. 결국 그게 환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절정의 순간에 이르러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절정이란 전환점의 다른 말이다.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운명이 아무리 광대하고 폭력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만은 그 운명과 맞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맞선다고 할 때, 맞서는 그 대상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이라도 전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맞서는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지 자체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993년 12월, 한국문학의 새로운 플랫폼이고자 문을 열었던 문학동네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발간, 그 첫 스무 권을 선보인다. 문학의 위기, 문학의 죽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문학의 황금기는 언제나 과거에 존재한다. 시간의 주름을 펼치고 그 속에서 불멸의 성좌를 찾아내야 한다. 과거를 지금-여기로 호출하지 않고서는 현재에 대한 의미부여, 미래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하다. 미래 전망은 기억을 예언으로 승화하는 일이다. 과거를 재발견, 재정의하지 않고서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없다.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새로 엮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지난 20년간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와 만나온 한국문학의 빛나는 성취를 우선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앞으로 세대와 장르 등 범위를 확대하면서 21세기 한국문학의 정전을 완성하고,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세계문학의 보편성과 접목시키는 매개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013 김연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밀도 높고 아름다운 문장, 우아하고 재치 있는 유머, 그리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장르로 굳혀온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은 우리가 지나온 시절에 대한 회의와 진실에 대한 열망으로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 장편소설은 공식적인 역사 기술(記述)이 지워낸 개별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소설의 인식론적 깊이를 심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소설은 인간/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어떻게 서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 답을 찾는다.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면서 비로소 존재하므로,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로서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할 터. 그렇다면 역사란 이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연히 마주치면서 생성된 하나의 우주라 볼 수 있을까. 김연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통해 개인과 역사에 대해 사유하면서 ‘역사란 한줄기의 거대한 흐름이라기보다는, 무수한 개인들이 연결되어 형성된 네트워크’라고 정의내린다. 그 우연의 집합이 갖는 초월적인 힘 앞에서, 우리는 무한한 경외심에 휩싸이게 된다. 우주의 별들처럼 반짝이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 이 소설은 우리의 삶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이 결코 의미 없는 생의 자국이 아니라는 따스한 진실을 보여준다. ‘나’, 그리고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광막한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는 이 장편소설은 우리의 일생은 소멸되지 않고, 이야기로 연결됨으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는 작가의 깨달음을 전달하고 있다. 개인 각자의 경험을 의미 있게 해주는 거대한 이야기가 붕괴한 자리에서 개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가. 그 거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삼은 집합적 주어가 폐기된 자리에서 개인들이란 누구인가. (…) 김연수는 민족 자주와 해방의 이야기가 몰락하기 직전의 운동권 학생을 작중화자로 내세워 그 이야기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출몰한 다양한 인물들의 열정과 허영, 진실과 허위, 광기와 치기가 서로 부딪치고 뒤섞이는 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어떤 진심, 어떤 연극, 어떤 모험에도 불구하고 광막한 우주 속의 혼자일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 한때 그를 그 자신 이상이게 했던 거대한 이야기 또는 거대한 환상에 대해 오랜 애증 끝에 바치는 별사別辭이기도 하다. _황종연(문학평론가, 동국대 국문과 교수) 유일한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전환되는 ‘일생의 뮈토스’와, 세계의 파편적 운동들이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역사로 전환되는 ‘역사의 산문화’, 이 둘은 실상 별개의 원리가 아닌 공통의 ‘지반’ 같은 것이다. 두 스타일을 동시에 감싸는 말로 이 소설을 (…) ‘설화적 모더니즘’이라 칭해보면 어떨까. 무수한 이야기들의 생성, 유통, 변화, 소멸을 환기하는 데 ‘설화說話’보다 적당한 단어도 찾기 어렵다. 또 소설에 관한 두 개의 중요한 질문을 소설의 스타일 자체로 답변했다는 점에서 (…)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이름하여 ‘설화적 모더니즘’의 한 진수를 보여준다. _백지은(문학평론가)
<개정판 | 사랑이라니, 선영아> 1994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등단한 이후 총 13권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오직 ‘쓴다’라는 동사로만 존재해온 작가, 김연수. 다채로운 그의 소설세계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편이 있다. 작가 스스로 밝히듯, ‘팬들을 위해 쓴 특별판 소설’인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그것이다. 그는 “잠시 쉬었다 가는 기분”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덧붙이는데, 한 편의 소설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친 취재와 관련 자료를 샅샅이 탐독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에 비추어 볼 때, 김연수의 이 말은 작법이 아닌 어떤 마음 상태와 관련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짧은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그답게 ‘사랑’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하나하나 살폈고, 다만 이전과 달리 좀더 경쾌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말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한국문학의 영토를 넓혀가는 새로운 상상력의 촉수 김연수 신작 소설집! 김연수. 이보다 더 ‘삶-이야기’를 갈망하는 작가가 또 있었던가. ‘나’의 이야기를 찾아 끊임없이 제 안으로 향했던 작가의 눈과 귀와 가슴은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우리’를 향해, ‘세계’를 향해 더 크게 열려왔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2005년 봄부터 2009년 여름까지 씌어진 아홉 편의 ‘이야기’ 속에는 어느 날 문득,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지는 ‘세계/나’와 거기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한쪽 끝에서 무너진 그 세계가 다른 한쪽 끝과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밑줄을 긋게 만드는 밀도 높고 아름다운 문장, 우아하고도 재치있는 농담과 유머, 그리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진지한 문제의식은 여전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위로받는다. 그가 기억하는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해야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본문 중에서)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따라 환한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일과 같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 내가 쓰는 소설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건 그날 저녁, 여행에 지친 우리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었던, 지평선을 가득 메운 그 반짝임 같은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머나먼 지평선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들이라고.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서, 혹은 야즈드의 불빛이 아니라고 해도._"작가의 말"에서
<개정판 |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내부에서 새어나온 가장 따스한 빛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_한강(소설가) “등장인물의 기억이 개인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연결돼 역동성을 확보하는 견고한 시각이 느껴진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3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의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다. 다양한 레퍼런스와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를 엿볼 수 있는 첫번째 소설집 『스무 살』(2000)과 작가적 역량이 극에 달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2005) 사이에 놓인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2002)는 김연수에 따르면 “처음으로 소설 쓰는 자아가 생긴 작품” “『꾿빠이, 이상』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본 시기”에 쓰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에 이르러 오로지 이야기만으로는 소설을 구성해보려는 작가적 자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의 배경이 ‘80년대 김천’이라는 점 때문에 김연수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집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자전소설’이라는 테마로 쓰인 「뉴욕제과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자연인 김연수의 개성과 사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작가로서 만들어낸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수록된 9편의 소설 가운데 유독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것은 자전소설의 형식으로 발표된 「뉴욕제과점」이다. 역전파출소 옆 뉴욕제과점 막내아들로 태어나 작가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를 휘감았던 ‘빛’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안에서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어떤 빛이 부스러기 같은 자잘한 형태로나마 남아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먹먹하게 전해온다. 그 외에 빵집 돈을 훔치고 달아난 게이코를 찾아가는 여정 위로 ‘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던’ 게이코의 상처가 포개어지면서 모두가 들떠 있는 크리스마스의 흥겨움 사이로 어떤 씁쓸함이 번지는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그게 사랑인 줄도 모르고 누군가의 마음을 할퀴었던 일을 뒤늦게 후회하는 「첫사랑」, 80년 5월의 광주가 마음에 어떤 무늬를 긁고 가는지를 그려낸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등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는 배경이 ‘80년대 김천’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국도』 등 소설 외적인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와 역동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특장으로 삼아오던 김연수가 두번째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 이르러 이전과는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며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이번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아주 오랜 세공과 발효를 통해 숙성한 작품으로, 거기에는 글쓰기를 위해 작가가 흘린 땀이 질 좋은 누룩처럼 스며들어 있다. 기억의 복원이라는 한국소설의 익숙한 경향을 다시 취택한 김연수의 글쓰기는, 그러나 한때 유행했던 후일담이라는 상투적인 길도, 기억의 빈자리를 메워넣는 용이한 길도 거부하였다. 작가는 개인의 구체적 체험에 돌을 던져 동심원적 파문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한국의 가까운 현대사를 되살려놓는 희귀한 길을 개척하였다. 그 파문 속에서 개인과 사회는 감각적인 암시로 서로 반향하고, 파편화된 기억들은 파편인 채로 다양한 형상과 결을 보여주며 다른 기억들과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통일성이 여전히 문학의 일급의 덕목이라고 한다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고밀도의 통일성의 세계이자 동시에 무한히 열린 통일의 세계라고 할 것이다. _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 본문에서 이제는 죽어서 떨어져나간, 그 흔적도 존재하지 않는 자잘한 빛, 그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직도 나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_「뉴욕제과점」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나마.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_「뉴욕제과점」 세상에 어떤 동물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일부러 부수지는 않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 _「첫사랑」 절대로 지면 안 된다고, 비가 뿌려도, 바람이 불어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태식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지지 않을 테니, 너도 지면 안 된다고 다지르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있다가는 니 삶을 망쳐버리고 마는 거야. 니 삶을 지키려면 용기를 내야 해. 참고 견디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_「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원더보이> “나는 글을 쓰게 되어 있다, 그렇게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이다.” ‘김연수’라는 소설가에게 이제 다른 수식어는 불필요해 보인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을 쓰게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살게 되어 있는” 소설가 김연수가 『밤은 노래한다』(2008) 이후 사 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2008년 봄부터 2009년 여름까지, 청소년문예지 『풋,』에 총 4회를 연재했던 『원더보이』가 연재를 중단한 지 꼭 삼 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것. 등단한 지 만 19년, 일곱번째 장편소설, 열한 권째 소설책, 열다섯 권째 단행본. 그사이에 2009년 봄부터 겨울까지 계간 『창작과비평』에 『바다 쪽으로 세 걸음』 1부를 연재한 바 있고, 2011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계간 『자음과모음』에 장편소설 『희재』를 연재하고 있으니, 다른 속뜻을 헤아리지 않아도 이미 그는 ‘글을 쓰면서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이 분명한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것’을, ‘무엇’을 쓰는 사람일까. “세계의 모든 것은 오직 변할 뿐이다. 나도 변했고 세계도 변했다. 모든 것은 변했지만, 이 세계가 좀더 살아가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야만 한다는 사실만은 변할 수 없다. 오직 그 이유로 세계는 변한다.” 몇 해째, 우리는 몹시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삼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들 말한다. 제 시가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무허가였으면 좋겠다고 노래하던 젊은 시인이 구속되었고, 청춘을 온통 이 나라의 민주화에 바쳤던 정치인이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35미터의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인 노동운동가가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여전히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혼자 죽어가는 독거노인들이 있다. 삼 년 전 용산에서는 무고한 시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192명의 작가들이 한 줄 선언을 발표했다. 믿기 어렵게도 사라진 줄 알았던 물대포가 시민들을 향해 쏘아졌고, 그 안에 최루가스가 섞여 있었으며, 그 속에서 쓰러져간 시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버스가 달렸고, 시민들이 광장으로 함께 나온 촛불집회가 있었다. 2008년 처음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던 날, 참석한 시민의 60%가 여고생들이었다. 유모차를 밀고 나온 아기엄마, 아이 손을 붙잡고 나온 아이아빠가 있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를 만나기도 했던 그곳은 ‘광장’이었다. 그 밤의 도시를 걸으며, 우리는 언제 우리가 광화문 한복판을 이렇게 산책해볼 수 있겠냐, 며 서로에게 농을 걸기도 했다. 사 계절을 꼬박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지낸 ‘그녀’는 오히려 지상의 우리를 염려하며 위로와 유머와 따뜻한 포옹을 보내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그 시간으로 거슬러올라가보자. 삼십 년 전, 오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어른들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마치 그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줄로만 알고 지내던 시절, 다른 사람의 불행마저 나 때문인 줄 알았던. ‘원더보이’ 정훈의 이야기도 그 시간에서 시작된다. 1984년, 열다섯 살 소년 정훈은 트럭에서 과일을 파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정훈이 본 마지막 아버지의 얼굴은 우주비행사처럼 밤거리의 불빛들을 향해 나아가던 그 옆모습이 된다. 사고 후, 아버지는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남파간첩의 차량을 향해 뛰어든 애국지사가 되어 있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대통령 각하 내외분을 비롯한 각계각층 모든 국민들의 간절한 기원에 힘입어” 일주일 만에 깨어난 정훈에겐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긴다. 이제 정훈에게는 그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자신을 낳다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의 존재가 새롭게 떠오르고, 취조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매일같이 고문실에 들어가야 했던 재능개발실에서, 자신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라던 권대령에게서 도망쳐나온 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FB(Fire Bottle, 화염병)’를 잘 던진다는 선재 형, 자신 때문에 한 첫사랑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어느 순간부터 남장을 하고 다니는 강토 형(희선씨), 자조(自助)농장을 꾸려가고 있는 무공 아저씨, 해직 기자 출신으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재진 아저씨…… 저마다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사연들 속엔 우리가 지나온 그 시절이 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일들. 그리고 정훈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원더보이』는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어른들도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우주에 이토록 많은 별이 있는데도 우리의 밤이 이다지도 어두운 것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서로를 껴안은 우리의 몸이 그토록 뜨거운 것은 “그때 우리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슬픔과 슬픔이 만나면 슬픔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세상은 다행하게도, 변하고 있다. 소설 속 강토 형은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말한다. “남자들은 길에서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으니까 세상에 그런 자유도 있다는 걸 모르겠지. 마지막으로 우리 그 자유를 만끽해볼까? (……) 이건 1986년에만 맛볼 수 있는 자유야. 여자가 종로 한복판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날이 곧 올 테니까. 네게도 이 자유는 곧 끝날 거야. 이 년만 있으면 넌 어른이 될 테니까. 그러니 이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대도 1986년에 우리가 종로2가 YMCA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유를 누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 삼십 년 사이, 이제는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시절을 지나, 흡연자들이 오히려 길거리에서 맘 놓고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원더보이』를 읽고 나면, 이 세상에 여전히 크고 작은 많은 기적들이 있음을 믿고 싶어진다. 그 기적은 어쩌면 매일매일 마주하고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꽁꽁 언 땅을 열고 싹을 틔우는 새싹이기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가장 행복한 시절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너무나 평범한 일상들이듯. “너는 이미 온전해. 우린 완벽하기 때문에 여기 살아 있는 거야. 생명이란 원래 온전한 것이니까.“ 해가 지는 쪽을 향해 그 너른 강물이 흘러가듯이, 인생 역시 언젠가는 반짝이는 빛들의 물결로 접어든다. 거기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넘으리라. 그 경계선 너머의 일들에 대해서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눈을 뜨고 꾸는 꿈속의 일, 그러니까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때문에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내가 본 그 수많은 눈송이들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 빛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_본문에서 멀리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면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사람도, 너무 힘들어 고개를 숙인 사람도 끝이 없이 텅 빈 우주공간 속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들처럼 보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건 멋진 여행이 될 수밖에 없어요. 누구나 한번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테니까, 우리는 다들 최소한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과 우주 최고의 여행을 한 셈이니까. 이게 고통과 슬픔을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입니다. _‘연재를 시작하며’에서(『풋,』 2008년 봄)
<개정판 | 스무 살> 김연수 문학의 시작, 15년 만에 다시 펴내는 그의 첫 소설집! 1994년 등단한 이후 21년 동안 8권의 장편소설과 5권의 소설집을 펴낸 이가 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자면 1년 반에 한 권꼴로 작품을 발표해온 셈이다. 이를 더 잘게 쪼갠다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일 테다. 오직 ‘쓴다’라는 동사로만 자신을 증명해온 작가, 바로 김연수다. 그러니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국소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지적 소설의 한 장(場)을 열어젖혔다는 평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라는 평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그의 성실한 소설쓰기가 어떠한 지반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소설세계를 갱신해온 작가 김연수, 지금의 그를 예감케 하는 그의 첫 소설집 『스무 살』을 마침내 15년 만에 다시 펴낸다. 이번 개정판은 단순히 초판의 몇몇 오류를 바로잡고 차례를 새로이 정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문예지를 통해 발표했으나 단행본에는 묶이지 않았던 「사랑이여, 영원하라!」와 세상에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미발표작 「두려움의 기원」을 수록해, 김연수의 첫 소설집이 재발간되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 안에서 어떤 작품보다 작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표제작 「스무 살」은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라는 뼈아픈 비유로 시작된다. 그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지 모른 채, 운동권에서는 약간 비껴선 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나온 스무 살 무렵의 시간들을 서정적인 필치로 감싸고 있다. 하지만 이 애틋한 온기에 몸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전혀 다른 질감과 톤으로 무장한 소설이 곧바로 이어진다. 「마지막 롤러코스터」는 ‘플라잉코스터’라는 상상의 롤러코스터를 만들어내어 극도의 스피드와 텐션을 추구하다 끝내 롤러코스터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안전바 하나에 의지한 채 예측 불가능한 속력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마지막 롤러코스터」는 시종 거친 속도감과 박력으로 독자를 끝까지 몰아붙인다. 자신이 만들었던 선풍기를 모조리 수집하고 다니는 이상한 선풍기 수집가의 이야기인 「공야장 도서관 음모사건」 역시 이 풍부하고 이채로운 소설세계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다. 선풍기를 만들면 만들수록 선풍기가 지닌 가능성을 고갈시켜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회의감에 빠진 선풍기 수집가를 통해, 소설쓰기를 추동하는 힘에 대해 역설적으로 묻는다. 이처럼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를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놓는가 하면 이를 뒤엎듯 리얼리티가 배제된 환상적인 소설을 펼쳐놓으며 다양한 소설적 기법을 자유롭게 실험하는 이십대의 김연수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지금의 김연수를 예감케 하는 빛나는 대목들이 『스무 살』 안에는 스며 있다. 그 반짝반짝한 것들이 잘 여물기까지 작가가 통과해야 했을 “축축하고 어둡고 싸늘한 터널”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을 함께 읽어온 독자들은 어느새 벅찬 마음이 들기도 할 것이다. 『스무 살』은 그 제목처럼 김연수의 소설세계에서도 ‘청춘’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첫’소설집만이 지닐 수 있는 어떤 확신과 불안, 에너지와 주저함 모두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는 지나왔고 누군가는 지나가는 중이며 누군가는 지나칠 예정인, 저마다의 스무 살의 모습과 꼭 닮은 모습으로 말이다. * 소설집 『스무 살』을 펴낸 것은 2000년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다고 해서 다들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을 느낄 즈음이었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생을 다 산 듯한 기분이었다. 2000년이 되면서 실질적으로 나의 이십대가 끝났다. 이십대가 끝나고 내게 남은 게 뭔가 싶어서 탈탈 털었더니 『스무 살』에 실린 소설들이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스무 살』이 마지막 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_‘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7번국도 Revisited> 『7번국도 Revisited』는, 1997년 출간되었던 『7번국도』를, 뼈대만 그대로 두고 작가가 처음부터 다시 쓴, 전혀 새로운 작품이다. 책장을 펼치고 그 길 위에 다시 올라서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지난 십삼 년이 간단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 그 위(안)에는 소설 속 화자(와 작가 자신)이 지나온 변화의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 실제로 작품 속엔 작가 자신이 7번국도를 다시 여행하게 된 이야기부터, 자동차전용도로가 된 후 자전거여행은 할 수 없게 된 사정, 그리고 7번국도를 다시 쓰겠다 마음먹은 이야기까지, 소설 밖 작가의 시간까지도 작품으로 함께 녹아들어 있다. 십삼 년간 눈부시게 성숙한 작가적 역량이 더해져, 형식과 내용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독특한 이야기의 만듦새는 한층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