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종
오현종
평균평점
달고 차가운

<달고 차가운> 공부 기계가 살인 기계로 전도되다! 희세의 이야기꾼 오현종의 속도감과 영상미 넘치는 문체 평범한 재수생이 전략적 살인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역설적 성장 서사 오현종은 “영상 문법에 바탕을 둔 속도감 있는 문장들”(문학평론가 손정수)로 “지금, 여기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희망을 계획으로 대체한 젊은이들의 삶을 목도”(문학평론가 강유정)하며 “그 속에 내장된 이데올로기들을 내파”(문학평론가 김형중)하는 영민한 작가다. 신작 『달고 차가운』은 매번 다양한 소재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인간 내면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치며 현대사회를 적나라하게 묘파하는 작가 오현종이 장편 『거룩한 속물들』 이후 3년 6개월 만에 내놓은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사랑에 빠진 평범한 재수생이 전략적 살인자가 되어 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그려 낸 『달고 차가운』은 오현종의 속도감과 흡입력, 영상미 넘치는 강렬한 서사의 힘을 통해 이 계절, 독자들을 ‘달고 차갑게’ 이끌어 갈 것이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등단 19년 차, 마흔다섯 살, 여성……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소설가 오현종의 내면 고백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이야기에 들린 작가, 오현종 그 섬세한 손끝이 그려낸 고색 모던한 복수 활극!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장르 간의 경계를 해체해온 소설가 오현종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이 출간되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낱낱이 흡수하여 문학의 장(場)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녀가 이번에 눈을 돌린 장르는 화살과 표창이 날고, 검광이 번득이는 무협 서사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자객열전」 속 인물 ‘섭정’에 매료된 오현종은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 줄기를 뻗어나간 끝에, 2010년부터 동명의 단편소설들을 연작 형식으로 발표한 바 있다. 단편 한 편으로는 속에서 끓는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어 연작소설로 이어나가고, 급기야 장편의 형태로 완성해내기 위해 오랜 시간 개고를 거듭한 작가의 집요한 노력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하고자 하는 열망’의 대변이기도 했다. 오현종의 각고(刻苦)의 결정체인 이 소설은 가상의 무대를 활보하는 자객들의 끝없는 복수극이자, 옛이야기의 요소들을 현대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녹여낸 한 편의 예술이다. 반전되는 선, 지탱하는 악 이야기는 액자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복수를 꿈꾸며 온갖 책들에 파묻혀 복수에 관한 문장을 모으는 사내가 있다. 그에게, 역시 복수만이 삶의 전부인 여인 ‘정(貞)’이 다가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액자 안에서 확장되는 그 흥미로운 이야기에는 피 묻은 칼로써 나라를 제 손에 틀어쥔 극악무도한 재상이 등장한다. 온 사방이 그의 적인지라, 재상은 방이 마흔 칸이나 되는 구불구불한 미궁을 만들어 그 안에서 매일 밤 침소를 바꾸며 생활한다. 어느 밤 솜씨가 뛰어난 한 자객이 재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자객은 제가 죽은 뒤 남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얼굴 가죽을 벗겨서 씹어 삼키고는 숨을 거둔다. 이 사건을 구심점으로 하여, 재상을 증오하지만 미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그의 손발이 되어 악을 행해야 했던 재상의 의붓아들, 의붓아들에게 물려받은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는 자객의 아이들 ‘명(冥)’과 ‘정(貞)’, 그리고 미궁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재상의 벙어리 첩 등이 번갈아가며 등장하여 관련된 진술을 겹쳐나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더 깊은 악(惡)을 향해 가라앉아가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 악은 읽는 것만으로 몸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된다. 악의 근원, 악을 없앨 수단으로서의 악에 대한 오현종의 사유가 드러나는 이 작품에는 전작 『달고 차가운』(2013)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소설 속에서 악인과 선인은 점점 얼굴의 왼편과 오른편처럼 닮아간다.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퍼뜨려 고독감을 견디고 싶었던 재상과 그 의붓아들의 감춰진 연약함, 그리고 그들과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자들이 숨기고 있던 잔혹함이 뒤로 갈수록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진실에 근접해간다. 누구의 것도 아닌, 이야기 액자 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액자 밖의 사내는 감았던 눈을 뜬다. 피가 낭자하고 살점이 튀는 이 생생한 이야기는 실제일 수도, 꿈일 수도, 아니면 벙어리나 어떤 무료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책 속 내용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가르마 가르듯 나눌 수 없는 액자 안 이야기는 그대로 오현종이 생각하는 ‘이야기성’의 본질을 표상한다. 그에게 이야기란 ‘누구의 것도 아니며, 결국은 한데 뭉쳐 한길로 흐르는 것’이다. 한번 등장했다가,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형태로 변주되어 다시 나타나는 작품 속 각각의 서사처럼, 이야기는 어떤 사실로부터 피어올라 누군가에 의해 살이 덧붙고,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에는 어떤 뚜렷한 경계가 없다. 이것은 오현종이 장르를 넘나들며 소설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액자 안과 밖의 관계는 어떤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액자 밖 사내의 얼굴에 한순간 재상의 의붓아들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액자 밖의 인물들이 액자 안의 인물들과 대응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소설 속의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한길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옛날 옛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온 이야기들, 그 세세한 흐름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때, 그 모든 이야기 가지들 역시 결국은 하나의 거대한 너울로 모이게 되는 것 아닐까. 모든 이야기는 결국 다르면서 같은, 인간의 ‘운명’을 따라 흐르기에. 다른 것이 아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재상의 벙어리 첩, 그녀가 쓴 자객 이야기를 읽는 자객의 딸 ‘정’, 그리고 ‘정’이 오랫동안 간직한 그 이야기를 나누어 갖고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액자 밖의 사내. 이 세 인물은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자’, 즉 소설에 투영된 오현종 자신의 모습이리라. 그가 써낸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당신으로부터 다른 누군가에게로 유장히 이어져갈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책이,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 속 인물들이 한때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죽고 나면 다 사라져버릴 부질없는 삶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누구든 자신만의 이야기, 들려줄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면 의미 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나는 그 믿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_‘작가의 말’에서 영화 〈파우스트〉를 보고 그녀의 소설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이십대 초·중반을 보낸, 그녀의 모교에 자리한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폭설에 길들이 묻히고, 그 길들이 가리키는 방향들이 지워지고 없었습니다.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그녀. 만물을 창조한 신과 욕망을 부추기는 악마,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투쟁하는 ‘인간’ 파우스트. 그러고 보면 그녀의 소설은 고뇌하는 파우스트와 퍽이나 닮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자기 자신의 욕망은 물론 타인들의 욕망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꿰뚫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재능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동시에 계속 소설을 쓰게 하고, 그녀만의 소설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그녀의 소설과 맞대면하는 순간, 저는 의식 못하는 새 욕망을 가리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헤치게 됩니다. 스카프로 은밀히 가리고 있던 목의 환부를 명의에게 드러내 보이듯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하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보이게 됩니다. 그녀에게는 또한 1934년 신춘문예 당선자인 백 살 할머니가 계십니다. 백 살 할머니와 사마천의 『사기』를 보검과 비책으로 무장한 여무사(女武士). 그녀의 고색 모던한 복수 활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삶을 되돌려받고 싶지만 돌려받을 수 없는 자. 복수는 그런 자들을 위한 것이에요.” _김숨(소설가)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저는 007보다 훌륭한 스파이가 될 수 있는데, 왜 폐기처분되어야 하죠?”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이 “왜” 또는 “어쩌면”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본드걸은 일회용이다. 최근 007시리즈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카지노 로얄>까지 스물한 편의 007시리즈를 보아오는 동안 우리는 스물한 명(혹은 그 이상)의 본드걸을 만나야 했다. 본드걸은, 다시 말하지만, 일회용이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해당 시리즈의) 본드걸의 임무 역시 끝이 난다. “일이 생긴 건가요?” “응.” “위험한 작전인가요?” “미미,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지 마. 마누라처럼 구는 건 딱 질색이라고. 그리고 집 열쇠는 경비실에 맡겨줘.” “알았어요. 하지만 나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왜?” “난 본드걸이잖아요. 본드걸이라면 새로운 임무도 함께 해야죠.” “이번엔 그럴 필요 없어. 지난번과 일이 다르다고. 걱정은 말아, 귀여운 미미.” ‘지난번과 일이 달라지면’ 본드걸 역시 달라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원한 본드걸이 되지 못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임무가 끝난 제임스 본드 역시 그저 그런 한 사람의 ‘남자’일 뿐이니까. “007, 배고프지 않아요? 밖에 나가서 외식할까요?” “아니, 귀찮아. 집에서 쉬고 싶어.” “007, 텔레비전 재미없으면 비디오 봐요. 거기 탁자 위에 공포영화 빌려놓은 것 있어요.” “난 공포영화 안 보는데.” “왜요?” “공포영화라니, 무섭잖아.” “그런 게 무서우면 어떻게 사람을 죽였어요?” “응, 그건 내 일이니까. 일하지 않을 땐 무서운 게 싫어. 코미디가 제일 좋아.” 알고 보니 본드 역시, 여행을 가서도 창 밖 풍경에 눈길을 주기보다는 축구중계부터 챙겨보고, 일이 없는 날이면 종일 소파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킬킬거리고, 대화보다는 섹스를 좋아하고, 섹스할 때조차 애무 따위는 생략해도 그만이라 생각하는 별볼일없는 한국 남자였던 것이다. 겨우 이런 놈팡이 때문에 그 많은 본드걸들이, 그리고 우리의 미미양이 그 큰 위험을 감수했단 말인가. 악당은커녕 바퀴벌레 한 마리 못 잡을 놈 같으니라구! 그런 본드에게 버림받은 후에도 미미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새 임무가 끝나고 새 본드걸과 함께 돌아온 본드에게 미미는 항변한다. “한번 본드걸은 영원한 본드걸이에요.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새 본드걸을 데려올 수 있어요?” “당신이 뭘 잘못 알고 있나본데, 본드걸은 원래 일회용이야. 한번 사랑받고 퇴출당하는 운명이라고.” “007은 일회용이 아니잖아요.” “그거야 007이니까 그렇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요.” “난 본드, 제임스 본드, 스파이야. 당신은 날 몰라.” 자, 이야기는 또한 여기에서 시작한다. 별수 없는 그저 그런 남자였던 제임스 본드에게 버림받은 후, 우리의 본드걸 미미양은 자신이 직접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뭐 미미양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미모의 금발 미녀는 아니다. 입사시험에 마흔 번이나 떨어진 경력이 있는 이 한국 아가씨는 언니 부부가 운영하는 갈비집에서 카운터를 봐주는 청년실업자일 뿐이었으니. 그러니 그녀가 스파이가 될 만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치고 살인면허까지 받게 된 그녀는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자기실현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애초의 목표는 본드에 대한 복수였으나 어느새 그녀는 ‘본드걸’이기를 그만두고 그녀 자신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난 본드걸 미미, 013, 스파이야. 당신은 날 몰라.” 첫 장편 『너는 마녀야』에서 이제 막 기성사회로 진입한 1970년대생의 사랑과 섹스를 도발적이고도 쿨하게 풀어 보였던 작가는 이제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남녀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화 같기도 영화 같기도 한 이야기는 책장이 지나치게 빨리 지나가버려 다 읽고 난 후에야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왜 아직 이런 게 없었지? 자, 이로써 제임스 본드의 007시리즈가 아닌 본드걸 013시리즈의 첫 편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평도수의 경신술, 전서구에 쪽지를 매달아 보내고 ‘게다짝’을 암기로 쓰는 미녀 미미의 이야기. 이건 신, 신, 신 하고도 새롭고 진화한 무협형 소설이다. 초일류 고수의 연인이었다가 비밀스러운 사문에서 비전의 내외공을 단련하고 강호에 출도한 미미, 악의 근원인 마두와 졸개들을 가차없이 쳐부수되 신룡처럼 꼬리가 없다. 그러나 고수의 경공처럼 가벼운 문체, 걸리는 데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도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인간의 인간다움이 숨어 있다. 오현종은 보물섬의 보물이 해적이 아니고 해적의 보물도 아니고 보물을 찾는 인간, 그 열망이라는 것을 격공타혈의 수법으로 일깨워준다. 해저기지나 찾아내고 좋아하는 제임스 본드는 모르겠지만. 성석제(소설가) 어떤 소설은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도 같아서 그 소설이 나오고 난 뒤에야 “아니 여태까지 이런 소설이 없었단 말이야?”라는 반응을 낳는다. 이를테면 이 소설이 그렇다. 거기서 거기인 영화를 스무 편이나 봐오는 동안 우리는 본드걸들의 후일담을 궁금해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많던 본드걸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본드걸 미미가 돌아왔다. 본드걸이라는 비정규직과 작별을 고하고 정규직 스파이 ‘013’이 되어서 돌아왔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청소년 문학문화잡지 『풋,』 2008년 여름호부터 총 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은 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다고 회상하지만 정작 그 시기를 직접 겪어내는 이들은 비틀비틀 우왕좌왕 힘겹게 통과해가는 ‘열병 같은’ 한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