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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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유럽의 교육> 거장 로맹 가리의 탄생을 알린 위대한 걸작 장 폴 사르트르가 꼽은 최고의 레지스탕스 소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아” 오직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음에도 또다른 가면 뒤에서 작품 활동을 한 두 얼굴의 작가, 권총 자살로 갑작스레 삶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 로맹 가리. 『유럽의 교육』은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탄생을 알린, 로맹 가리의 데뷔작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로렌 비행중대에서 군복무 중에 쓴 이 소설은 1945년 출간되어 곧바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프랑스 비평가 상을 수상하고, 장 폴 사르트르에게 ‘최고의 레지스탕스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작가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출간되기 일 년 전 원고의 성공을 예감한 영국의 출판사에서 ‘분노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특이한 이력이 있기도 하다. 『유럽의 교육』은 2차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배경으로, 빨치산들이 항독 투쟁 중인 숲에 들어간 열네 살 소년 야네크가 그들과 함께하면서 진정한 용기와 사랑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그리는 문장의 온도는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소년 야네크와 빨치산들, 그리고 나치 독일의 만행 아래 고통 받는 이들의 이야기는 인간 존재에 대한 희망을 거두어간다. 그럼에도 로맹 가리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하다.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는 없더라도 절망에 굴하지는 말아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작디작은 발걸음들로 진보해왔다. 『유럽의 교육』에서는 처녀작에서 발견되기 마련인 미숙함이나 젊은 치기를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최고 기량이 발휘된 『자기 앞의 생』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교육』은 고통과 비참에 대하여 구구하게 늘어놓지 않고도 그 슬픔을 적확하게 포착하여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로맹 가리의 시선은 작품에 놀라운 생명력과 입체감을 부여한다. 『유럽의 교육』은 로맹 가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가 평생에 걸쳐 이야기하고자 한 ‘위대한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마음 깊이 느낄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2013년 개정판은 이전 판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원서의 편집에 준해 다시 편집한 판본이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쿠르 상을 두 차례 수상한 유일한 작가, 로맹 가리! 로맹 가리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Les oiseaux vont mourir au P rou』(1962)가 김남주씨의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알려져 있는 로맹 가리는 1980년 12월 2일 파리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8년 만에 파경을 맞았던 부인 진 세버그(영화배우)가 자살한 지 1년 뒤의 일이다. 참전중에 쓴 첫 소설『유럽의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로맹 가리는『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 상을 받은 데 이어,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두번째 공쿠르 상을 수상함으로써 평단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표제작「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포함해 열여섯 편의 기막힌 단편들로 엮어진 이번 소설집은 로맹 가리의 문학적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편 한 편이 인간과 삶에 깃든 숨은 진실과 감동을 전한다. 세상의 끝, 희망의 끝, 그 모든 끝의, 생의 비리고 안타까운 아름다움 야망과 열정의 인간이었으며, 꿈과 모험을 사랑했던 불세출의 작가 로맹 가리. 세기를 풍미한 거장의 진면목을 확인케 하는 열여섯 편의 기발하고 멋진 소설들은 '인간'이라고 하는 거대한 허영에 대한 신랄한 탄핵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 기만에 대한 로맹 가리의 날카롭고 흥미진진한 적발과 풍자는 설명될 수 없는 삶의 영토를 늘 그 속에 품어냄으로써 쓸쓸하지만 심오한 성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가슴을 뒤흔드는 여운을 잊지 못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서, 인간의 그 오랜 분석(糞石) 위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인간'을 기다리며 지금-이곳의 안타까운 인간의 얼굴을 발굴해내는 작가의 정교한 손길에 새삼 감탄을 금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학 거장의 진면목을 확인케 하는 열여섯 편의 뛰어난 단편들 세계의 끝, 페루의 외딴 바닷가로 새들이 날아와 죽는다. 때가 되면 새들은 죽기 위해 먼길을 날아와 모래 위로 떨어진다. 로맹 가리의 단편「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이렇게 홀로 그것을 바라보는 한 외로운 사내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섬세하게 짠 구절들을 음영이 있는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 돋보이는 또다른 단편「류트」, 인간성의 이면을 시니컬하게 그리고 있는「어떤 휴머니스트」, 빠른 호흡, 거친 말투, 반전과 긴박감으로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몰락」, 성형의 비애를 신랄하게 꼬집는 「가짜」, 자신이 줄곧 천착해오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다분히 알레고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비둘기 시민」, 거리두기와 뒤집어보기를 통해 참신한 정복자의 모습을 그려낸「역사의 한 페이지」, 서머싯 몸을 방불케 하는 반전을 준비해둔「벽」과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피학적인 묘사의 위력을 과시하는「지상의 주민들」, 인간의 욕심에 일격을 가하는「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나치 학대를 다룬 소설의 새 경지를 개척한「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그리고 특별히 공들여 쓴 흔적이 역력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메시지가 담긴「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에 이르기까지 총 열여섯 편의 단편들에서는 세계와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작가의 독특한 해석으로 각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노르망디의 연

<노르망디의 연>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로맹 가리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하나의 정체성에 속박되지 않으려고 여러 필명을 썼던 작가, 본명으로 발표한 소설 『하늘의 뿌리』와 필명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유일무이하게 두 번 받은 작가 로맹 가리. 그의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노르망디의 연』이 출간되었다. 『노르망디의 연』은 작가가 죽기 직전, 1980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이면서 마음산책 ‘로맹 가리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열다섯 번째 책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펼쳐지는 이 전쟁 서사극은 작가가 생애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희망을 ‘연’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로맹 가리가 평생 천착했던 사랑, 우애, 자유, 인간의 존엄성 등의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깊은 감동을 전한다. 이렇듯 진중한 주제를 다루지만 주인공이자 화자인 소년 뤼도의 성장과 첫사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소년의 섬세한 감수성과 함께 유머를 듬뿍 담아내고, 다양한 처지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켜 몰입감을 선사한다.

징기스 콘의 춤

<징기스 콘의 춤> “위대한 희극 문학에 대한 우리 시대의 공헌” 앙드레 말로가 극찬한 로맹 가리표 블랙 유머의 정수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는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자신의 태생적 뿌리를 암시해왔다. 로맹 가리의 첫 수상(비평가상)작 『유럽의 교육』은 나치에 저항하는 폴란드의 레지스탕스를 그린 작품이었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쓴 『자기 앞의 생』과 『솔로몬 왕의 고뇌』에 등장하는 로자 부인, 솔로몬 루빈스타인은 모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었다. 마음산책이 국내에 소개하는 로맹 가리의 열두 번째 책 『징기스 콘의 춤』의 주인공(징기스 콘)도 역시 유대인이다. 다만 그는 사람이 아닌 ‘유대인 유령’이다. 『징기스 콘의 춤』은 가히 ‘로맹 가리표 블랙 유머의 정수’라 할 만하다. 로맹 가리는 유대인 학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전직 유대인 희극배우였던 유령 ‘콘’을 화자로 앞세웠다. 이 같은 희극적 장치는 역설적이게도 암담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한다. 로맹 가리는 콘의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통해 인류의 범죄를 비웃고, 역사적 비극을 미화하는 모든 예술 작품을 경계한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종종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작품에서 콘이 경고하고 있듯 인류의 덧없는 욕망은 계속해서 무수한 희생자를 양산하고 있다. 더욱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름 뒤로 행해지는 추악한 범죄는 오늘의 한국 사회 현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말, ‘파블로 피카소 문화재단’은 공연 안내문에서 이 작품의 현대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징기스 콘의 춤』은 익살맞으면서도 불편한 한 편의 보드빌처럼 쓰였다. 이번 공연에서 ‘베스티올 극단’은 인간 정신의 복잡성, 정신분열 지경에 이른 현실과 지각의 장애를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에서 로맹 가리는 언제나 희생양을 찾는 부조리하고 잔혹한 세계의 초상화를 제시한다. 1967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지금 이 시대의 현실과 잘 공명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죽은 자들의 포도주

<죽은 자들의 포도주> 로맹 가리가 스물세 살에 쓴 첫 장편소설 사후 12년이 지나서야 드러난 원고 로맹 가리는 그에게 두 번째 공쿠르상을 안겨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 외에도 프랑수아 봉디, 샤탄 보가트, 프랑수아즈 로바, 포스코 시니발디 등 여러 필명을 사용해 평생 3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쓰고 숨은 이야기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이 소설 『죽은 자들의 포도주』에 얽힌 일화는 기구하다. 본명인 ‘로만 카체프’에 가까운 ‘로맹 카체프’로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면서 그의 생애 첫 장편소설이고, 또 그가 생전에 출간을 보지 못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로맹 가리가 엑상프로방스대학 법학과에 입학하던 열아홉 살에 쓰기 시작해 스물세 살인 1937년 탈고했으나 여러 번 출간을 거절당한 탓에 그의 포부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38년, 로맹 가리는 당시 그가 연모하던 스웨덴 기자로 기혼자이던 크리스텔 쇠데룬드에게 이 원고를 사랑의 증표로 주었는데, 로맹 가리의 손을 떠난 원고는 그가 세상을 뜬 지 12년이 지난 1992년에야 파리 드루오 호텔에서 경매품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다. 그때까지 원고를 보관한 건 크리스텔 쇠데룬드였다. 그로부터 다시 22년이 지난 2014년에야 이 원고는 갈리마르 출판사를 통해 책의 꼴로 빛을 보았다. 초고답게 장 구분도 없이 한 호흡으로 적혀 있던 원고는 편집을 거쳐 그럴듯한 짜임새를 띠게 됐는데, 원서를 편집한 사람은 1992년 경매에서 초고를 낙찰받은 당사자, 문학 편집자이자 인류학자 필리프 브르노다. 마음산책의 열두 번째 로맹 가리 작품이자 소설로는 열 번째인 『죽은 자들의 포도주』는 2014년 출간된 초판본을 우리말로 옮겼다.

별을 먹는 사람들

<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가 그린 제국주의의 참상 외교관 시절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낸 필치 호와트 목사는 매년 교회에 백만 달러 가까이 벌어다주는 설교자다. 그는 신과 악마의 대결을 권투 시합처럼 묘사하여 언론으로부터 ‘쇼맨’이라 불린다. 어느 날 한 독재자의 초대를 받아 떠난 그는 자신의 동행이 모두 ‘광대’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군인들에게 잡혀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가 안온한 삶에서 느닷없이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서 그가 바라본, 제국주의와 독재가 점령한 제3국의 현실의 끝엔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별을 먹는 사람들』은 마음산책이 출간한 로맹 가리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독재와 저항, 종교와 위선,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로 혼란한 제3국을 이방인 목사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만행의 배경을 전하고, 평범한 원주민이 독재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선진 문명과 토착 문화의 충돌 속에서 그려낸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불가리아 소피아, 미국 워싱턴, 볼리비아 라파스 등을 돌다가 외교관직을 사임한 1961년에 『탤런트 스카우트』라는 제목의 영어 작품으로 발표했다. 그것을 1966년에 직접 불어로 번역,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재발표했다. 한국어판은 로맹 가리가 보다 능통한 언어로 고쳐 쓴 『별을 먹는 사람들』을 토대로 하였다. 이미 출간된 작품을 새로운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는 첫 아내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하고 진 세버그와 결혼해 아들을 하나 두었다. 『별을 먹는 사람들』은 로맹 가리의 여느 작품처럼 개인사의 일면을 담고 있는데, 등장인물 중 독재자 알마요의 ‘여자 친구’가 진 세버그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졌다. 그녀는 소외 계층을 연민하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스스로를 마취하는 사람들 제정신으로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비참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별’은 마스탈라를 가리킨다. 이는 가상의 지역 특산물로, 코카 열매보다 강력한 효과를 자랑하는 마약의 한 종류다. 산중 계곡에 사는 농부들은 수 세기 전부터 마스탈라라고 하는 나뭇잎을 씹어요. 쿠혼 지방어로 이들을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 부르지요. 그게 부족민들에게는 엄청난 행복감과 평안함을 가져다줘요. 만성적인 영양부족을 그렇게 보충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른 것을 쥐여 주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빼앗아 가면 안 되는 겁니다. _ 본문중에서 독재자 알마요의 모친은 소설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이 잎을 씹는 인물로 등장한다. 총살당할 위기에 처해도, 아들의 약혼녀가 알은체를 해와도,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차에 올라타서도 ‘별’을 씹기만 한다. 그녀는 식민 지배와 독재 정권에서도 살아남은 이들 특유의 무력감과 비이성적 태도를 보여준다. 취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민중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맹 가리는 스스로를 마취하는 이가 비단 그녀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근사한 생각으로 마약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의 재능으로 혹은 사람들의 힘으로, 그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으로, 문화전당을 가지고 마약을 한다. 이제는 온 지구를 덮고 있어서 달로 가져가기도 하는 미국의 잉여 물자를 가지고서, 쓰레기를 쏟아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마약을 한다. 그들은 인디언보다 더 많이 마약을 한다. _ 본문중에서 로맹 가리는 작품 속 인물 모두를 ‘별을 먹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독재자 알마요가 추구하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 미국인 여자의 집착적인 자아실현 욕망, 광대와 그 업계 종사자들이 꿈꾸는 초인간적 묘기가 그렇다. 그들은 목적한 바를 이룰 수만 있다면 기꺼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고 선언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수백, 수천 명의 목숨까지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광증에 가까운 욕망은 어째서 이들이 사소한 성취에, 일상적 행복에 안주하지 못하는 것인지 되묻게 한다. 어째서 이들은 멀리, 더 멀리 나아가려고만 하는가. 그게 어떤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믿고 있는가. 세상은 사악한 곳이에요. 성공하고 싶으면 자기의 게임을 해야 하고, 사악해야 해요. 진짜로 사악해야, 사악함의 챔피언이 되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원하는 것을 절대로 얻을 수 없어요. 세상은 신의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신의 것이 아니죠. 재능은 신이 주는 게 아닙니다. 신 말고 다른 사람한테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주인이죠. 여기에서는요. 그 사람이 ‘보호’해주는 겁니다. _ 본문중에서 이들은 현실에서 선善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쩌면 그것을 경험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어딘가에 취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맹렬히 쫓지 않으면 쉽게 불안에 휩싸이는 것이다. 이들에게 삶을 추동하는 건 끝없는 욕망뿐이다. 그게 아니면 마스탈라를 씹으며 모든 것을 외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라는 묘기는 계속된다 이 작품에서 폭동은 사방에서 들끓는 욕망의 충돌로 발생한다. 무기력과 광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터져 나온 민중의 분노를 상징한다. 혁명을 근거로 발생한 폭동은 때마다 이루어지는 축제의 형식을 따른다. 독재자를 잡아 불태우고 그 시체를 끌고 다니며 환호하는 카니발리즘 후에는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혁명의 성패와 무관하게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주린 배를 움켜잡고 ‘별’을 씹는다. 이런 식으로 반복 체험된 역사가 그들을 망쳐놓은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호와트 박사는 상념에 잠긴다. “앞으로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 것만 같”다고 여긴다. 그는 인간의 운명이 지닌 안타까움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지금까지 펼쳐온 자신의 오만함을, 미국인 여자와 광대들을 향한 증오의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삶이란 누구에게나 남루한 것이라고,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저 모두가 하루하루를 견디며 “가장 잘하는 짓으로 먹고살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한다. 앙투안 씨는 안장에 단단히 앉아 조약돌 세 개로 손 묘기를 하면서 이 작은 놀이에 희한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체념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살아 있고 조약돌 세 개로 묘기를 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는 대활약을 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살아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가장 해내기 어려운 묘기였다는 것을, 인간들은 전혀 그런 데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결국 그들은 언제나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_ 본문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그 위태로운 묘기를 보여주고자 로맹가리는 『별을 먹는 사람들』을 완성했다. 독재자의 끔찍한 성장기와 악의 돋친 대사로 가득한 이 작품이 문득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로맹 가리는 우리에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비참을 이 책 한 권에 펼쳐놓았다.

게리 쿠퍼여 안녕

<게리 쿠퍼여 안녕> 주변부 청년들, 무엇이 그들을 현실에서 내몰았을까 로맹 가리가 아들 디에고에게 바친 책 『게리 쿠퍼여 안녕』은 마음산책이 출간한 로맹 가리의 열 번째 책이다. 세상에 던져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청년들의 끓어오름을 로맹 가리 특유의 거친 독설과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은 1964년 미국에서 『스키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로맹 가리의 최고 성공작이 되었다. 그 후 68혁명 이듬해에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게리 쿠퍼여 안녕』으로 다시 발표했다. 한국어판은 로맹 가리가 보다 능통한 언어로 고쳐 쓴 『게리 쿠퍼여 안녕』을 토대로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63년에서 1968년까지이며, 젊음이 불타올랐던 ‘68년 5월 혁명’을 암시한다. 프랑스에서 지독한 냉소로 악명을 떨쳤던 잡지 <하라키리>가 창간된 해는 1960년, 체 게바라가 처형된 뒤 마을 교회당에서 주민들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전시된 해는 1963년, 미시마 유키오가 도쿄의 어느 연병장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할복을 자행한 해는 1970년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니는 20세기 사회 전반을 지배한 냉소주의의 정점에서 탄생해서 당시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젊은이들을 이해해야 해’라느니, ‘젊은이들을 믿어야 해’라고 떠들어대는 교활한 부성주의는 정말 웃기는 수작이라고. 지금 그들은 청춘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고 있어. 무슨 목적으로? 진짜 계급투쟁 속에 분열 요소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지. 청춘이라는 계급을 만들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화해시키려는 거지. 무력화 작전이랄까. - 본문 중에서 베트남전쟁 징용을 피해 스키를 지고 알프스로 간 미국인 청년 레니, 가난한 알코올중독자 외교관의 딸 제스, 자기 자신에게까지 알레르기가 있는 인간 혐오자 버그,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를 벗어나고자 미국을 떠난 흑인 청년 척……. 이 책은 세상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의 혁명 ‘직전’의 분노를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인물들을 통해 순수한 이미지, 영화배우 ‘게리 쿠퍼’로 상징되는 정의롭고 강경한 영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한다. 『게리 쿠퍼여 안녕』은 ‘사회’가 아닌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싸우며, ‘나’를 탓하는 데 익숙해진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유효하다. 과거에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확실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음을 인정해야 했다. 부모들 세대는 운이 좋았다. 그 세대에게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있었고 그들에게 모든 짐을 지워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히틀러도 스탈린도 아니요 세상 사람 모두가 문제였다. - 본문 중에서 가치 절하된 스무 살 청년들 개인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사람이 30억 명쯤 있는 모양이야. 너에게 겁을 주고 네가 개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려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어. 그게 진짜라면 말이야, 흑인이니 백인이니 하는 건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는 건 다만 30억뿐이지. 무게로 태어나는 거야. 버그 말이 옳아. 그는 이렇게 말했어. 나라는 존재는 인구 낙진일 뿐이라고. 인구 폭발이 있었고, 우린 일종의 방사능 낙진 같은 존재라는 얘기지. - 본문 중에서 주인공 레니와 제스 그리고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베트남전쟁이나 지금 눈앞의 사회에 저항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인구 폭발’에 저항했다. “인구란 화폐와 같다. 통화량이 많을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오늘날의 스무 살 청년은 가치가 완전히 절하된 존재다. 세상에 너무 많다. 인플레이션 상태다. 인구는 폭발하듯 불어나 당신을 짓밟아버린다”고 외치며 더 이상 인간이 ‘개인’이 아닌 ‘숫자’로 취급되는 상황에 저항한다. 인간관계가 이젠 단지 인구상의 마찰일 뿐이요, 모든 “진정한” 문제는 계급이나 인종, 국가를 바탕으로 수백만 단위로만 수치화되는 것이다. 이때 레니는 개인이 사라지고, 숫자로 취급되는 것을 냉소하며 “소외”를 택한다. 레니의 강박적인 고민거리는 바로 게리 쿠퍼와의 작별, 끝장난 개인주의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 딱 맞는 말이 있다. 바로 소외다. 이 기막힌 말의 뜻은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반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인적 드문 알프스의 어딘가, 고도 2,500미터에는 그들의 공고한 요새가 있다. 사회를 버리고, ‘인구’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은 눈 덮인 산으로 숨어들었다. 겨울이면 인적 없는 눈 위에서 스키를 타며 모든 것을 잊고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질퍽한 진흙이 산을 덮는 여름이 오면 굶주림을 피해 도시로 내려간다. 사회의 공식에 자신을 끼워 넣으며 “망가진다”. 이제 완전한 개자식의 자아 외에 허용되는 다른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가? 허용된 유일한 ‘나’는 공중변소 같은, 공적 유용성이 있는 자아뿐이었다. - 본문 중에서 ‘나’와 ‘세계’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이 세상 어디에도 ‘내 집’은 없다는 것을 청년들은 안다. 이제 자신의 삶이 “하나의 토큰”일 뿐이요, 자기 자신이 “자판기에 주입되는 하나의 토큰”일 뿐임도 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곳’, ‘다른 삶’을 믿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다른 곳’은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새 시대가 올 거라고 ‘믿는 척하기’를 그만두지 못할 뿐이다. ‘믿는 척’을 그만두지 못하기에, “이 세상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달”이라 불리던 청년들은 폭탄을 짊어지고 혁명을 위해 세상으로 나간다. 온갖 이념적 출격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나’의 소왕국은 끄떡없이 버티며, 그 한계에서 벗어나 타자들 고통의 거대한 무無 속으로 망명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을 삼켜버릴 대재앙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나’만은 지긋지긋하게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둘 것이다. 세상이야 무너지든 말든 상관 않겠어. - 본문 중에서 사랑은 이 세계에 포섭되는 방식 세상에는 여전히 뭔가 기막힌 것이 있다 절망에 끝에 선 로맹 가리의 청년들은 무의미에 대항해서 여러 길을 택한다. 기존의 “개자식들을 새로운 개자식으로 바꿀 뿐”임을 알면서도 물리적인 혁명의 길로 나아가기도 하고, 주춤거리면서 “더러운 세상”에 포획되기도 한다. 그리고 레니와 제스처럼 인구라는 숫자로 조직된 사회에 ‘마음먹고’ 편입되는 것을 택하는 방법도 있다. 텅 빈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을 뻔히 예측하면서. 급기야 레니는 악몽까지 꿀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하트 모양 덧문이 달린 어느 예쁜 집에 정착해 있었다. 뒤에는 작은 텃밭 정원이 딸려 있고, 그가 사랑스런 두 아이와 노는 동안 트루디는 부엌에서 스위스 독일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 밖에 애정 어린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는 착한 스위스 독일산 강아지도 한 마리도 있었고, 바깥에는 번지수 위에 그의 이름이 적힌 우편함도 하나 있었다. 레니는 온 머리카락을 곤두세운 채 식은땀에 젖어 깨어났다. 주소와 신원, 그것은 만사 끝장을 의미했다. (…) 사랑이란 당신을 복귀시키려는 삶 같은 거다. - 본문 중에서 로맹 가리가 “즐겨 다루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던 『게리 쿠퍼여 안녕』의 또 하나의 주제는 사랑이다. 레니는 한 여자에게 고착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는 곧바로 도망친다. 그에게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멈추는 것이며, 이 세계에 포섭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그는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어째서 늘 증오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대단한 매력을 발휘하는지 문득 깨달았다. 증오가 용기를 주고, 비범한 힘을 주고, 당신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증오가 부족해진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사내다움이 필요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레니의 연인 제스는 이 소설에서 냉소주의에 대한 냉철한 관찰자이자 분석가로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 역시 동시대인들처럼 무의미한 개인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면서 스스로를 조소한다. 하지만 제스는 첫 만남에서 지독한 냉소주의자 레니를 즉각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세계에 대한 유사한 태도로 인해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된다. “이 지구상에 수십 억이나 되는 인간이 있고 그 자식들 모두가 너 없이 살 수 있어, 제스. 그런데 왜 난 안 되는 거지?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왜 하필 레니냐고? 난 너 없이 살 수 없어. 누구라도, 다섯 살배기 꼬마도 할 수 있는 거시기를 이 레니는 못한단 말이야. 넌 이게 이해가 돼?” - 본문 중에서 인간에 대한 로맹 가리의 신뢰가 낳은 책 아들이며 청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단언하건대 로맹 가리의 신랄한 유머와 지독한 냉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로맹 가리는 『게리 쿠퍼여 안녕』이 출간되었을 당시 인터뷰에서 “도시환경은 완전히 생존 불가능하게 변했다. 청년들의 폭발이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계 쓰레기로 가득 찬 우주에서 산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익명적이고 기술적인 초대형 사회로 나아가고 물질적 삶의 모든 조직을 관장하는 이 우산 아래에서 앞으로 청년들이 원하는 삶의 유형부터 심지어 언어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젊은 집단들의 희망이 이어지기를 이야기한다.

흰 개

<흰 개> 격동기 미국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신랄한 시선! 로맹 가리의 미국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 『흰 개』 국내 초역 1968년 2월 17일 폭우가 쏟아지던 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숙소에 손님이 찾아든다. 산책을 나가 며칠이나 소식이 없던 누렁개 샌디가 친구를 데려온 것이다. 잘생기고 건장하며 친절하고 붙임성 좋은 이 회색 독일셰퍼드는 금세 로맹 가리 부부와 가족이 돼 사랑을 받지만, 가슴 깊이 불안함을 야기하는 미심쩍은 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특정한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살점을 찢으려는 것.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부색이 검었다. 1960년대 초,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는 날로 골칫거리가 되어가는 흑인들의 인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급기야 흑인을 골라 물도록 특수 훈련한 경찰견을 풀기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은 이 개를 ‘흰 개’라 불렀다……. 밖으로는 10년 가까운 베트남전쟁으로, 안으로는 인종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흑인들의 시위로 고초를 겪던 1960년대 말 격동기의 미국, 그 혼란한 자리에 프랑스 사람 로맹 가리가 있었다. 집단 내지 국가 단위로 강제되던 이념 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소수자의 신념을 유지하고, 인간에 대한 회의와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인간애를 모순되게 품은 그에게 이 시절은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었다. 광기. 이 책은 로맹 가리가 1960년대 미국에서 겪은 일들에 토대한 자전 소설이다. 흑인을 공격하도록 세뇌당한 ‘흰 개’를 원래의 심성으로 되돌리기 위해 흑인 동물조련사 키스를 찾게 되면서 겪는 인종 갈등, 부부 갈등, 이념 갈등 등 여러 인간 문제가 이 책의 주된 이야기다. 피부색과 이념에서 파생한 광기를 ‘태생적 소수자’로서 맞닥뜨린 주인공 로맹 가리의 고뇌가 냉소적이고 신랄하되 사색적인 어조로 담겼다. 1968년부터 1969년까지 2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흑인과 백인, 개인과 집단, 남성과 여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각종 대립 구도로 사회 갈등이 한창 고조되었던 격변기 미국에 관한 생생한 현장 보고다. 『흰 개』는 인종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흑인을 두둔하지도, 백인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로맹 가리의 눈에 집단의 이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늘 광기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로맹 가리는 이 책의 전면에 나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동시에, 당시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선 과격파 흑인 단체의 위선과 말론 브란도 등 스타급 인사들의 ‘숟가락 얹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흑인 단체에 놀아나는 아내 진 세버그의 혼란과 자기모순을 비판적으로 어루만진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논리에 숨어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흑백 양 진영의 모순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특히 아내와 ‘흰 개’의 심상을 교묘히 오버랩하여 가정의 위기를 사회 우화로 발전시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 부부의 미시사를 사회라는 거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2년 만의 국내 소개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 『흰 개』는 1968년 단편 형태로 미국 <라이프>지에 처음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장편소설로는 1970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같은 해 로맹 가리가 직접 옮긴 영어판이 미국에서 출간돼 곧장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 번역되는 것으로, 첫 출간 후 42년 만에야 소개되지만 ‘적대적 공생’ ‘정치적 올바름’ 등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을 묵직하게 제시한다. 그의 여느 소설처럼 이 작품에서도 로맹 가리는 자기 경험을 천착하지만, 자신에서 사회로, 그리고 인류로 시야를 본격 확장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미국의 저명한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은 “자신의 시대에 전설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로맹 가리는 자신이 원숙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라고 호평했다. 이 작품은 1982년 새뮤얼 풀러 감독이 연출을 맡아 동명의 영화(우리 제목 <마견>)로도 만들어졌는데, 원래는 로맹 가리 생전인 1970년대 후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법정 성폭행 혐의로 촬영 전 미국 밖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결국 1979년 진 세버그가 죽은 채 발견되고 1980년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한 이후에야 제작이 완료됐다. “진 세버그의 성전(聖戰)에 관한 이야기” ‘흰 개’의 이야기는 크게 하나의 줄기를 따른다. ‘흰 개’를 입양하고, 그 개가 ‘인종차별견’임을 깨닫고, 재훈련하기로 마음먹고, 결국 교화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념의 희생양으로 안타깝게 떠나보내는 것. 이 소설의 중심엔 언제나 ‘흰 개’가 있다. 그런데 ‘흰 개’를 보노라면 그 못지않게 가련한 어느 한 사람의 모습이 은유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바로 로맹 가리의 아내 진 세버그다. 하얀 피부로 흑인의 인권 운동을 지원하는 그녀는 백인의 멸시와 흑인의 농간에 휘둘리면서도 순수한 선의를 끝내 놓지 못하는, 안타까우면서 갑갑한 여인이다. “미스 세버그, 당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이 파리의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에게 혁명적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죠. 거기엔 ‘블랙팬서’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까지 적혀 있어요. 우리가 이걸 출간하면 미국에서 당신의 배우 경력은……” 진은 대답했다. “출간하세요.” 그런 뒤 그녀는 얼마간 울었다. 미스 세버그는 아직도 실망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나는 그녀가 할당액 수표에 서명을 하기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해 거실이 비길 기다렸다가 자러 갔다. 이 소설에서 진 세버그의 모습은 원래 회색이면서 ‘흰 개’로 불려야만 하는 그 개의 모습과 겹친다. 둘은 커다란 갈등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같다. 로맹 가리는 이 점이 탐탁지 않았다. 피부색은 사람의 성질을 대변하지 못하니 본질을 봐야 한다고, 더는 집단의 농간에 놀아나지 말라고 자신의 말로, 그리고 남의 입을 빌려 종용한다. 악한 진영에도 있듯이 이 ‘착한 진영’에도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과 개자식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흑인 개자식은 흑인이기 때문에 개자식이 아니라, 개자식이기 때문에 개자식인 거야.” 결국 뜻이 달랐던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1968년 가을 이혼한다. 소설과 현실 모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부부의 이혼 사유를 오롯이 인종 문제에 관한 견해 차이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한 권의 소설이 나올 만큼 중대한 일이기는 했다. 인종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중대했지만 부부에게도 중대했다. 개인사와 사회사, 그러니까 미시사와 거시사가 연결되는 건 이 지점이다. 물론 둘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는 이혼으로는 끝나지 않을, 애증과 연민으로 결속된 고리가 있었다. 『흰 개』가 출간된 1970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로맹 가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혼이 우릴 갈라놓기엔 우린 매우 가깝습니다.” 그러나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처럼 전형적인 미국 이상주의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호구라는 얘기죠.” 로맹 가리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79년, 진 세버그는 파리 외곽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보수적인 시절에 흑인 운동 등 진보적 발자취를 이유로 FBI의 감시와 대중의 뭇매를 맞던 터였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진 세버그가 죽은 뒤 로맹 가리는 이 소설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진 세버그의 성전聖戰에 관한 이야기다.” 『흰 개』가 한 작가의 삶에서, 부부라는 한 운명 공동체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인과 흑인, 인간의 자리를 모색하다 『흰 개』는 로맹 가리 자신이 주인공인 자전 소설이다. 즉, 실제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독자는 알지 못한다. 로맹 가리뿐 아니라 진 세버그, 마틴 루터 킹, 제시 잭슨, 랠프 에버내시, 바비 케네디, 말론 브란도, 존 프랑켄하이머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의 실명과 실제 사건이 분명 소설을 지탱하는데도 비현실적인 기운이 감도는 건 그만큼 시대의 초상이 일그러졌다는 방증이다. 그 초상에서 가장 일그러진 시기가 바로 이 책의 배경인 1968년부터 1969년이다. 1968년, 소설 속 로맹 가리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광기를 직접 겪는다. 우연히 입양한 ‘흰 개’가 흑인을 물도록 훈련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치유’하기 위해 보낸 사이 개의 원래 주인이 방문한다. 두 손주를 이끌고 찾아온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온화한 모습을 한, 그러나 정신만은 일그러진 인종주의자였다. “당신의 깜둥이 친구가 개를 아프리카로 데려갔습니까?” (…) 그는 일어섰다. 크고 투박한 두 손은 보호하는 몸짓으로 다시 두 개의 작은 금발 머리 위에 놓였다. 이 개자식은 훌륭한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끔찍한 건 이자가 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선량한 인간이었다. 로맹 가리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한,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과 경멸에 분노하지만, 이것이 그를 흑인 진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흑인의 경우도 백인에 대한 맹목적 증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흑인이 있었고, 거기에 선의를 베풀어 선민의식이나 드러내는 백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 어느 진영에서도 화해의 답안을 찾지 못한 로맹 가리는 프랑스로 눈을 돌린다. 그곳에서는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서 촉발해 권위주의와 보수주의, 반전과 평등을 부르짖는 집단적 움직임이 68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었다. 드골주의자인 로맹 가리에게 반드골 성향의 이 움직임이 살가울 리만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는 지독히도 오지랖 넓은 프랑스의 혁명에 소수자의 오한을 먼저 느꼈다. 이곳에도 집단의 논리가 들어서 인간 낱낱을 위한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랑을 위해 이념에서 도피한 흑인 친구 발라드의 이름을 빌려 이 심경을 토로한다. “추상적인 얘기라면 지긋지긋해요. 생미셸 대로에서 흑인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저 사람들은 마치 자기들 삶은 성공한 것 같아요. 계급투쟁, 흑인문제, 자본주의……. 저들은 자기들이 떠들어대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리고 자신의 말을 전한다. 나는 다수라면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다수는 언제나 위협적이다. 그러니 내가 희망을 잔뜩 품고 샹젤리제로 갔을 때 지나칠 만큼 만장일치로 움직여 소름 끼치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쇄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당혹감을 느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합지졸 몇백 명과 함께 조롱을 받으며 로렌의 십자가가 그려진 삼색기를 흔들 생각으로 온 나는 속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좌파건 우파건 나는 쇄도하는 인파라면 모두 추악하게 느껴졌다. 나는 태생이 소수자다. 사랑과 화해의 모범 로맹 가리는 인간의 대지에서는 정작 인간을 위한 자리를 찾기 힘들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대양을 두 번이나 힘주어 언급했는지 모른다. 대양에는 인간이 뿌리내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잉태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백인과 흑인, 미국과 프랑스 모두에서 회의를 느껴 대지 바깥에 눈을 돌린 로맹 가리의 태도를 누구는 양비론이라 부를 테지만, 답안이 오류라면 답안지 바깥에서 답을 찾아볼밖에. 로맹 가리에게 답안은 대양에 있었다. 그러나 로맹 가리가 인간에게 느꼈던 건 증오가 아닌 애증이었다. 그는 부당함과 부조리에 여전히 분노할 줄 아는 ‘청년’을 마음속에 품었기 때문이다. 기억과 교감에서 비롯한 일말의 인간애를 놓을 수 없는 그는 결국 다시 인류에 눈을 돌려 그 안에서 해답을 찾고야 만다. 사랑을 위해 미군에서 탈영하고 또 흑인 투사인 아버지의 기대마저 저버린 발라드, 그리고 그의 하얀 피부의 연인 마들렌. 이념과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두 사람의 사랑은 진정 인간 화해의 모범이라고 로맹 가리는 말한다. 발라드가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다. 검은 뺨에 닿은 저 하얀 살결은 내가 부러운 눈길로 염탐하는 이 커플에게 절대적 완벽성을 부여했다. 서로 대조된 자들이 부족함을 보완하려고 자연스레 서로를 찾을 때의 완벽성. 이것은 세상의 위대한 법칙 가운데 하나였다. (…) 나는 눈앞에 해결책을 보고 있었다. 임신한 이 백인 여인의 배 속에 든 해결책. 유일하게 가능한 미래는 이런 대조의 조화다. 그것은 언제나 이 땅에서 가장 뿌리 깊은 법칙이었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 여섯 번째 출간작 늙음에 대한 두려움, 그 너머를 향한 로맹 가리식 사랑법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의 여섯 번째 출간작을 선보인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발표한 직후 로맹 가리 이름으로 출간한 첫 작품이다. 온 세상이 로맹 가리를 이 소설의 화자 ‘자크 레니에’와 동일시하며 그를 성 불구자라고 굳게 믿는 동안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같은 해인 1975년 『자기 앞의 생』을 선보였다. 예순을 앞둔 자크 레니에는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애인 로라와 사랑하는 사이다. 레지스탕스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던 그는 출판과 관련된 사업을 하며 사랑과 일 모두 정력적으로 꾸려온 인물이다. 하지만 회사는 유럽의 경기 침체와 맞물려 금전적인 위기에 처하고, 마침 레니에의 사랑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를 맞는다. 어느 날 베네치아에서 또래로부터 사랑의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고백을 듣고부터 그 역시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것. 사랑하는 여자를 성적으로 더는 만족시켜줄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늙고 무력해진 육체에 점점 더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성 불능”에 대한 두려움은 관계를 망치고 사랑을 퇴색시킨다. “한꺼번에 모든 것에 맞서서 싸울 수가 없”음을 자각한 뒤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호텔 방에 칼을 들고 잠입한 도둑 루이스의 “동물적인 아름다움”에 홀린 그는 그 뒤 수시로 루이스와 로라의 “쓰레기 같은 배설”의 정사를 상상한다. “몸을 가동하려면 완전한 경멸의 이미지들이 바로 눈앞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적 판타지를 통해서만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자 결국 자살을 생각한다. 지하철 경고문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예순을 앞둔 남자의 무력한 육체와 경기 침체를 맞은 서유럽의 상황이 절묘하게 병치된다는 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비단 한 인간의 노쇠가 아닌, 한 사회, 더 나아가 한 문명의 종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경계를 지나면 승차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지만, 그 경계조차 넘어서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사랑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로라. 레니에는 로라 곁에서 경계 너머 가보기를 갈망한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 존재를 압박하는 강박관념을 그리는 로맹 가리의 언어는 우회적이지 않고 적나라하며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를 발휘한다. 노년을 직시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 레니에는 말장난, 동문서답식의 말 돌리기로 ‘추락하는 남성’이라는 해묵은 공포를 누그러뜨리려 하지만, 노트 형식으로 써내려간 고백의 말미에서 문제의 정면을 뚜렷하게 들여다본다. “둘 사이의 모든 것”, 곧 사랑은 육체나 자존심, 품위, 그 모든 것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다. 노트 형식으로 써내려간 노쇠한 이의 고백기 음울하면서도 가차 없는 로맹 가리의 통찰과 유머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서술 도중 화자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독백이 불쑥 끼어든다는 점이다. 말미에 가서야 드러나지만, 고백의 형식을 띤 이 소설은 레니에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기는 길고긴 한 권의 노트다. 이 고백기에서 레니에를 사로잡은 늙음에 대한 공포는 종종 로마제국의 멸망, 가라앉는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 서서히 기울어져가는 피사의 사탑으로 비유된다. 이제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이 고백기는 정치와 권력, 그리고 돈과 섹스가 떼려야 뗄 수 없는 복잡한 관계망에 속해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쉰아홉 살의 레니에는 서른다섯 살 어린 브라질 여인 로라를 사랑한다. 그는 레지스탕스의 영웅으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력이 있지만, ‘성’의 문제를 맞닥뜨리자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추락하는 남성’의 공포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죠. 정력. 당신 미쳤군요. 어린애한테 정신이 나간 데다가 발기도 안 된다 하고…….” 그녀의 눈길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것 역시 명예지요…….”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분명 돈 문제도 있겠지요. 남자가 스스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항상 돈 문제가 끼어 있어요…… 안 그래요?” 한때는 전능하리라 믿었던 ‘수컷’의 무능함에 대한 고백은 서유럽의 경기 침체와도 맞닿아 있다. “유럽은 전력을 잃었다. 자체 활력이 이젠 없어. 원자재는 80퍼센트가 다른 나라에 있다. (…) 우리의 모든 에너지, 생명력의 원천은(그러니까 우리 불알 같은 거) 제3국에, 옛날 식민지에 있단 말이지.” 레니에는 원자재가 있는 “제3국”에서 자신의 대체자를 찾아낸다. 로라와 함께 잠자고 있던 호텔 방에 칼을 들고 잠입한 루이스다. 그는 “젊음으로 윤기가 흐르는” 남자다. 레니에는 그를 보자마자 “나는 그렇게 동물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뒤 몸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성적 판타지 속으로 루이스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레니에는 말한다. “마치 야생의 삶이 나에게 다가와 미래의 약속,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것만 같았”다고. 레니에의 판타지에 등장하는 루이스는 로맹 가리가 자신의 또 다른 삶으로 삼은 에밀 아자르의 육체적 재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을 발표한 뒤 로맹 가리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성 불능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자크 레니에가 바로 작가 자신의 현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로맹 가리와 닮은 점이 많다. 당시 로맹 가리의 나이는 예순하나였고 스물네 살 연하의 아름다운 연인 진 세버그가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레니에와 마찬가지로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며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은 전력 또한 있다. 하지만 로맹 가리는 성을 주제로 한 텔레비전 문학 대담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Apostrophes》에 출연해 사람들의 추측에 이렇게 응수했다. “제가 소설을 쓰는 것은 제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등장인물의 절실함이 빚어낸 적나라한 언어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너무 늙어버린 육체에 깃든 젊은 마음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연약함 자크 레니에에게 냉소는 일종의 도피처다. 그는 냉소 속으로 몸,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연약함을 숨긴다. 냉소로 도피해버린 뒤 본래의 자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고백하지만 결국 그는 뚜렷하게 자신을 들여다본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고백하는 행위는 분명 힘을 갖는다. 이는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레니에가 남긴 노트 외에도 중간중간 삽입된 로라의 편지와 메모 또한 같은 역할을 한다. 로라는 순수하고 명철한 사랑을 품은 여인이다. 몸이 늙는데 마음만은 너무 젊다는 데 절망하는 레니에를 잡아 일으키는 건 로라의 사랑과 신뢰가 가진 힘이다. “모든 걸 다 넘어서 당신과 함께 계속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누가 당신에게 행복을 운운하나요? 난 당신에게 오로지 사랑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누구나 좋았던 시절만을 떠올리며 살 수는 없다. 유효하지 않은 승차권을 쥐고 저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도피처가 아닌, 지지대가 필요하다. 모든 걸 넘어서 동행해줄 사랑과 신뢰라는 지지대. 그 경계를 넘어서고 나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고 로맹 가리는 이 소설에서 넌지시 이야기한다. 마치 작가로서의 생명이 이미 끝났다고 단언했던 세상의 무수한 말을 넘어, 또 하나의 자신인 에밀 아자르를 창조해낸 자신의 일화를 빗대기라도 하듯이.

레이디 L

<레이디 L> 19세기 유럽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랑과 혁명의 연가 열정적 사랑으로 그려낸 집념 혹은 집착의 얼굴, 국내 초역 『레이디 L』 영국 귀족 레이디 L의 여든 번째 생일. 은행가, 장관, 주교 등 존경받는 지도층으로 자라난 자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아나키즘에 가담한 과거를 숨겨온 그녀는 이 진부한 시절의 안위와 틀에 박힌 허위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결국 레이디 L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이 평온을 깨뜨릴 작은 혁명을 마음먹고 자신을 흠모하는 계관시인 퍼시에게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녀의 오래전 이름은 아네트 부댕. 파리에서 아나키즘만 부르짖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 매음굴 세탁부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생계 때문에 매음굴로 굴러든 그녀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아나키스트이자 일생의 사랑인 아르망을 만나고, 그의 눈에 띄어 아나키스트 교육을 받는다. 그러다 아르망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임신하지만, 사랑보다 ‘인류’와 이념이 중요했던 아르망은 아나키스트 테러리즘에 가담했다가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이에 그녀는 배 속의 아기와 아르망을 구하기 위해 영국 귀족이자 자유로운 보헤미안이며 그녀의 비밀을 속속들이 아는 글렌데일 공작의 도움을 받고 조건부 가약을 맺는데……. 귀족 노부인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로맹 가리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레이디 L』은 아나키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이념과 대의와 변혁의 구호가 판치던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아나키스트와 아름답고 열정적인 빈민가 처녀, 그리고 보헤미안에 괴짜이지만 애정과 배려가 넘치는 한 영국 귀족의 관계를 다룬 역사 로맨스 소설이다. ‘맹목성’ ‘애증’ ‘종속과 피종속의 관계’ 등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랑과 이념의 닮은꼴 성질을 연인이라는 개인의 층위에서, 그리고 인류라는 집단의 층위에서 파헤치는 작품으로,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가 매력이다. 그리고 로맹 가리 특유의 냉소적ㆍ지적 표현력으로 회화처럼 그려낸 당시 유럽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레이디 L의 회상을 따라 파리, 런던, 제네바, 밀라노 등 유럽 곳곳을 넘나들며 벌이는 사랑의 행각과 모험이 유머러스하고 애잔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레이디 L은 왜 오래도록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는 것일까. 그녀 사랑의 끝은 어땠고 이 고백의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결말을 만나게 된다. 『레이디 L』은 1958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프랑스에서는 1963년 출간되었다. 두 달도 안 걸려 쓴 영어판을 로맹 가리가 직접 프랑스어로 옮기며 약 9개월간 새로 쓰다시피 했는데, 한국어 번역은 프랑스판을 따랐다. 『레이디 L』은 1965년 피터 유스티노프가 감독하고 폴 뉴먼, 소피아 로렌, 데이비드 니븐이 주연한 영화도로 만들어졌다. 사실에서 착상한 허구 샤를 드골이 가장 아낀 로맹 가리 소설 권말에 첨부한 「참고 자료」에서 밝히듯 로맹 가리는 19세기에 실존했던 아르망 드니라는 아나키스트가 테러 감행 후 ‘증발’해버린 사건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 거기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어느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레이디 L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한다. ‘에밀 아자르’ ‘포스코 시니발디’ 등 여러 필명으로 살며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재기 어린 작가답게 허구와 사실을 섞어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로맹 가리는 애상과 유머와 지성이 조합된 판타지로 역사의 틈새를 메워나간다. 이 작품은 로맹 가리의 사상적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샤를 드골이 가장 좋아한 로맹 가리 소설로 유명하다. 드골은 『레이디 L』 출간 후 로맹 가리에게 편지를 보내 “자네 소설 『레이디 L』은 정말 대단하군! 몇몇 이들이 ‘지나치다’고 말할 정도야”라고 극찬했는데, 특히 이 책에서 조롱한 영국식 허위와 위선에 유쾌해했다. 아르망은 한 계단을 더 올랐고, 그로모프가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노력 끝에 빠져나오자 총을 들어 그의 심장에 한 발 쏘았다. (…)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림과 속삭임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고, 밀랍 같은 얼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돌연한 막간극 전에 파티 장소를 떠날 채비를 하던 사람들마저 명예를 걸고 계속 춤을 추었다. 영국인다운 침착함을 보여야 하고 여주인이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는 듯이. 이념의 혁명, 사랑의 혁명, 관용의 혁명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혁명 중 이 이야기는 맹목적이고 열렬한 사랑을 줄기로 쓴, 혁명의 시기에 보내는 연가다.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기, 그러니까 20세기를 사는 레이디 L이 19세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녀는 현재의 안위보다는 과거의 기억에 갇히기를 원하는 듯싶다. 삶이 그런 것 아니던가. 그림의 천진한 기법 때문에 그 장면의 깊은 백치미가 한층 더 돋보여 아주 마음에 들었다. 60년 동안 위대한 예술만 접하다 보니 그녀는 걸작이라면 넌더리가 났다. 그리고 점점 더 조잡한 채색 그림들, 그림엽서들, 물에 빠진 아기를 구하는 용감한 개들, 장밋빛 사랑을 받는 고양이들, 달빛 아래 연인들로 가득한 빅토리아시대풍의 이미지들이 좋아졌다. 이야기가 주로 펼쳐지는 19세기는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 각종 혁명 이념이 태동해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영국은 빅토리아시대로 가장 번영을 누렸다지만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반동 역시 격렬했다. 그래서 레이디 L에게 이 시기는 무언가 솔직하게 갈구할 수 있고 열정적일 수 있었던 젊음의 시기이자, 미모와 질투심과 애증과 변덕으로도 마음을 돌리지 못한 연인의 기억이 각인된 시기로 남았다. 이 낭만과 혁명의 시기를 세 사람이 함께 채색해나간다. 인류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아나키스트 아르망,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나키스트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 아네트(젊은 시절의 레이디 L), 그리고 고귀한 신분임에도 거리의 여자 아네트를 사랑해 귀족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괴짜 공작 글렌데일. 저마다의 명분으로 사랑을 쟁취하려는 노력들이 시대의 이념과 맞물려 다양하고 역동적인 애정의 모습을 그려낸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죠? 나를 사랑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나더러 완전히 달라져서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할 수 있죠? 내가 혁명의 소명을 거부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오. 나 자신을 포기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으라고 요구할 순 없소.”(아르망) 그녀는 혁명가가 자신에게서 본 것을 즉각 이해했고, 그가 상상하는 모습대로 보이려고,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비치려고 여성의 능숙한 기교와 직관적인 지성을 총동원했다. 부패한 사회의 희생양으로, 모욕당하고 분개해서 그와 함께 혁명에 가담하기만을 바라는 영혼으로, 그와 그의 동료들의 투쟁을 함께하기만 바라는 영혼으로 보이려고 말이다.(아네트) “출생이니 귀족이니 신분이니 하는 그 모든 너절한 것들을 난 결사적으로, 심지어 공격적으로 조롱합니다. (…) 인간 존재에게 중요한 것은 성품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더없이 고귀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요. 당신은 내게 완벽한 동반자이자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의 이상적인 상속자가 될 겁니다.”(글렌데일) 어떤 이는 관념을 좇느라 사랑을 포기하고, 어떤 이는 사랑을 위해 자기를 버리며, 또 어떤 이는 사랑하기 때문에 아픔을 포용한다. 각자가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 자기를 걸고 혁명 중이다. 이 목소리들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던 낭만의 시기를 로맹 가리는 특유의 냉소와 유머, 애상과 향수로써 그려낸다. 첫 아내 레슬리 블랜치에게 보내는 로맹 가리의 선물 레이디 L은 그녀를 숭배한 귀족들에게 자신이 남긴 첫인상을 떠올리다가 예쁜 금발을 뒤로 젖히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려 주변 사람을 살짝 걱정하게 만든 적도 있다. (…) 사람들은 이 고귀한 귀부인의 기질에는 어딘지 비도덕적인 데가 있다고, 심지어 허무주의적인 데가 있다고들 수군거렸다. 게다가 그런 기질은 스스로에게 모든 걸 허용할 수 있고, 여러 세기 동안 특권을 누리느라 살짝 상궤를 벗어나기도 하며, 전혀 정중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귀족들이 종종 보이는 특징이라고들 말했다. 이 책의 프랑스판이 출간된 1963년, 저널리스트 피에르 뒤마예와의 TV 대담에서 로맹 가리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어느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레이디 L’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로맹 가리의 여러 전기는 레이디 L의 모델이 첫 아내 레슬리 블랜치임을 밝히는데, 『레이디 L』 곳곳에서 레슬리 블랜치의 모습이 드러난다. 《보그》지의 편집장이자 작가였던 그녀는 로맹 가리에게 영국식 예절과 우아한 영어를 가르쳐준 고마운 사람으로, 레이디 L처럼 당당하고 열정적이며, 넘치는 애정과 질투심과 앙심을 가진 여성으로 알려졌다. 『레이디 L』의 영어판(1958)과 프랑스어판(1963) 출간 사이에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 사랑을 싹틔웠다. 로맹 가리가 이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썼고, 이 작품이 레슬리 블랜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상상해보는 건 독자의 몫이다.

여자의 빛

<여자의 빛> 로맹 가리 만년에 탐닉한 사랑의 모습 하룻밤 새 벌어지는, 급조한 사랑의 실패기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택시에서 내리던 남자가 길을 지나던 여자와 부딪친다. 여자가 놓친 물건을 주워주던 남자는 택시 기사의 재촉에 못 이겨 때마침 여자에게 택시비를 빌리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수표책을 사이에 둔 채 인연을 터간다. 미셸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아내(야니크)를 둔 남자다. 아내는 죽음에 굴하느니 오늘 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미셸은 아내의 부탁대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카라카스로 떠나려 했지만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던 길이다.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하기에 그 공백을 한시도 버틸 수 없다. 한편 리디아는 반년 전 자동차 사고로 어린 딸을 잃었고 그 충격에 남편은 실어증에 걸렸다. 그녀는 딸의 죽음이 고통스러워 남편과 헤어지려 하지만, 이제 와서는 헤어짐의 이유가 고통에 있는지 식어버린 사랑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두 사람이 서로의 고통을 털어놓고,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고, 사랑을 사유한다. 곧 있을 아내의 빈자리를 급조한 사랑으로 대체하려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구애를 섣불리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 이 두 사람이 하룻밤 동안 벌이는 ‘밀고 당기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새날을 맞을까? 1977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여자의 빛』은 매력 있는 사십 대 남녀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지새우면서 벌이는 짧은 사랑 이야기다. 파리를 배경으로 사랑에 대한 사색과 사변, 유머를 적절히 혼합한 로맹 가리 만년의 재기가 돋보인다.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시간의 빛을 따라 파리의 장소들을 옮겨가며 차츰 감정에 깊이를 갖추는 성숙한 남녀의 애정 행각이, 설레고 초조하고 애틋하다가도 실망감을 느끼는 연애의 복잡다단한 양상을 잘 드러낸다. 여자를 꾀려는 궤변 같기도 하고 진심 같기도 한 말을 늘어놓는 주인공 미셸, 그리고 도덕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리디아, 이들 둘이 벌이는 기 싸움 혹은 관념 싸움이 로맹 가리의 언어에 실려 냉소적이고 역설적인 매력을 뿜는다. 사랑은 갖은 설득과 노력을 배반하고 이따금 우연한 곳에서 온다. 『여자의 빛』을 출간했을 때 로맹 가리는 이미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였고, 그 3년 뒤 세상을 떴다. 요컨대 『여자의 빛』은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던 로맹 가리의 애정관이 마침내 맺은 결실로도 읽을 수도 있다. 사랑을 표방하고 끊임없이 갈구하는 이 소설에서 작가 자신의 삶을 읽는 일이 즐거움을 더한다. 『여자의 빛』은 1979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연출하고 이브 몽탕, 로미 슈나이더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감독은 원작을 각색하면서 책에 나오는 대화를 거의 그대로 살렸다. 이 영화의 각본에는 밀란 쿤데라도 참여했다. ‘불멸하는 것’으로 죽음의 조련에 맞서기 사랑 타령 이상의 사랑 소설 『여자의 빛』은 단조로운 연애 소설이기를 마다한다. 로맹 가리는 아픈 사연을 지닌 남녀가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간다는 고리타분한 설정을 애초에 배제하고,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을 맞닥뜨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개어 연애 소설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미셸은 딸이 죽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실어증에 걸린 남자, 가슴에 심근 경색이라는 죽음의 전조를 품고 초조하게 살아가는 남자 등 죽음에 굴복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죽음에 굴복하지 않을 것, 불멸하는 것, 그러니까 사랑을 그토록 애타게 좇는다. 그에게 사랑이 건재함을 확인하는 일은 곧 세상을 뜨게 될 아내를 영원히 기리는 일이다. 완벽하던 자기 부부를 갈라놓는 죽음 그 무뢰한에 저항하기 위해 미셸은 사랑이 불멸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야니크,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어떻게 여전히 흠 없이 처음 같지? 모든 게 퇴색하고, 모든 게 깨지고, 모든 게 진력이 난다고들 하던데…….’ ‘그건 퇴색하고 깨지고 진력나는 사람들만 그런 거야.’ ‘당신과 나의 문제는 뭐지? 커플이라면 으레 갖는 문제들, 그런 것들 말이야.’ ‘커플이 갖는 문제라는 게 뭔데? 문제가 있으면 커플이 아닌 거 아닌가.’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를 잃었다는 이유로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보게. 그건 사랑이 없는 거라네.” 아내 야니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날, 미셸은 사랑의 불멸성을 입증하기 위해 아내의 권유대로 새로운 사랑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길에서 우연히 부딪친 리디아와 하룻밤 여정을 함께하며 끊임없이 구애하고 아내의 사랑을 전이시키려 한다. 하지만 리디아는 왠지 이 남자의 태도가 미심쩍다. 사랑이 과연 설득하고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무리하게 사랑을 이루려는 데에는 다른 속셈이 있는 게 아닐까? 그는 그저 자기 아내의 대용품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런 암묵적 물음들이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해 조심스럽고 사색적이며 때로는 대담한 애정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당신은 나를 지독히 대충 파악하고 있어요. 나에 대해 잔인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죠. 당신은 다시 한 번 사랑에 성공하려고, 다시 한 번 다른 여자를 사랑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낑낑거리며 대양을 헤엄쳐 건너는 당신을 보면 물속에 뛰어들고 싶어지죠. 당신이 익사하는 걸 막기 위해서요.” ‘로맹 가리’와 가명 ‘에밀 아자르’ 사이의 줄타기 가면 뒤에서 새어나오는 로맹 가리의 웃음 『여자의 빛』이 출간된 1977년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1975년 공쿠르상을 받은 『자기 앞의 생』을 포함해 이미 세 권의 소설을 출간한 뒤다. 그는 조카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로 내세워 활동했는데, 『여자의 빛』이 나왔을 때 비평가들 중에는 로맹 가리가 잘나가는 조카를 표절한다고 힐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컨대 『여자의 빛』과 『자기 앞의 생』에는 아래처럼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오. 사랑 없이 살 수 있소. 다만 그게 몹시 지루하다는 거요.”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앞의 생』에서 이런 비판을 들었을 때 로맹 가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로맹 가리가 흘렸을 냉소를 짐작해볼 수 있다. 『여자의 빛』을 쓸 무렵 로맹 가리는 비록 다른 필명이지만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하던 중이다. 거기에 세월이 가져다준 성찰을 얹어 『여자의 빛』을 완성했다. 여전한 필력, 여전한 반항 기질, 완숙한 성찰. 이미 예순 중반에 다다른 나이였지만 로맹 가리의 작품에서 여전히 젊고 진실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다.

밤은 고요하리라

<밤은 고요하리라> ‘로맹 가리, 로맹 가리를 말하다’ 대담 형식의 자서전 탄생 100주년 행사에 걸맞은 번역 작품 마음산책의 일곱 번째 로맹 가리 작품 『밤은 고요하리라』가 출간되었다.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는 작품으로, 그가 세상을 뜨기 6년 전인 1974년 발표한 책이다.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쓴 첫 책 『그로칼랭』을 출간하며 작가적 쇄신을 노리던 그해, 로맹 가리는 자신을 따라다니던 온갖 소문과 염문을 『밤은 고요하리라』를 통해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로맹 가리의 다채로운 경험과 생각이 오롯이 정리된 이 책은, 그가 오랫동안 꾹꾹 눌러왔던 진짜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터놓은 진정한 자서전 격 작품으로, 그간 나온 평전들은 이 책의 내용을 많은 부분 참고하였다. 『밤은 고요하리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두 명의 담화자가 이끌어가는 대담집이다. 로맹 가리, 그리고 실제 기자 겸 작가로 로맹 가리의 죽마고우인 프랑수아 봉디. 이 두 사람이 격의 없이 진정성을 담아 답하고 질문하며 성(性) 문제부터 개인사, 문학, 인물, 국제 정세까지 경계 없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본문 내내 장도 절도 없이, ‘의식의 흐름’처럼 맥락도 예고도 없이 온갖 화제를 건드리는 두 남자의 수다 같은 대담을 읽다 보면, 그동안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의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인간’ 로맹 가리의 진짜 모습을, 그가 일궈온 지위와 문학 세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로맹 가리는 이 책에서만큼은 ‘자아’의 검열 없이 모든 걸 털어놓으리라고 다짐한다. ‘자아’가 야기하는 모든 허위는 그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끊임없이 경계하던 것이다. 자기애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의 이유로, 허위에 대한 반발 때문에 로맹 가리는 그토록 자신을 드러내었다. 『밤은 고요하리라』는 그러한 기조의 연장선에 있는 책으로, 로맹 가리 특유의 거친 독설과 재치, 냉소적인 유머가 그의 어느 소설보다 빛난다. 자아라는 녀석은 믿기 힘들 만큼 거만하잖나. 10분 후에 자기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비극적일 정도로 진지하고, 햄릿처럼 독백하며 영원에 호소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쓸 만큼 터무니없는 배짱도 가졌지. 내 작품 속에서 그리고 내 삶에서 미소가 차지하는 몫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자아를 상대로 벌이는 복수극이라고 말해야 할 거네. 터무니없는 자부심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잔뜩 품은 자아를 상대로 말이네. 소설에서 자신과 자기 경험을 숨김없이 드러내던 로맹 가리가 ‘대담’에까지 나서며 모든 걸 털어놓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본문에서 이름을 밝히진 않지만, 그는 진 세버그와 낳은 아들 알렉상드르 디에고 가리를 위해 이 책 『밤은 고요하리라』를 남겼다. 모든 걸 내줄 수 있는 유일한 혈육에게 남기는 인간적이고 문학적인 유언. 이 책에 빼곡한 경험들의 사실성과, 이 책을 써내려가던 그의 진실한 마음가짐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난 얼굴 붉히지 않고 자네 말처럼 나를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네. 다른 이유란 없어. 무엇보다 나한텐 너무 어린 아들이 하나 있네. 녀석이 나를 만나기엔, 내가 이 모든 것을 말하기엔 너무 어려. 그 녀석이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나는 여기 없겠지. 이런 상황이 나로선 꽤나 안타깝네. 무척이나. 녀석이 이해할 수 있을 때 이 모든 걸 말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없을 거란 말이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이 자리에서 그 녀석에게 말하는 거네. 로맹 가리의 속내를 완전히 표현해낸 작품 로맹 가리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 이 책은 대담 형식을 취한다. 저자의 오랜 친구이며 기자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봉디가 묻고 로맹 가리가 답하는 형태다. 그런데 실은 가상 대담이다. 대답하는 이야 물론 로맹 가리지만, 질문을 던지는 이도 로맹 가리다. 하나의 자아 속에서는 밀실공포증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작가답게 그는 답하기 꺼려질 법한 질문들을 던지고 반문하는 역할까지 떠맡아 거침없이 자신을 까발린다. -「옮긴이의 말」에서 대담 형식으로 쓴 『밤은 고요하리라』에는 죽마고우인 프랑수아 봉디가 질문자로 나오지만, 실은 이름만 빌렸을 뿐이다. 이 책에 담긴 질문과 답은 실제로 모두 로맹 가리의 것이다. 끝없이 쏟아내는 사실들에 ‘가상 대담’이라는 허구의 옷을 입힘으로써 로맹 가리는 더 자유로이 말할 수 있었고, 독자에게 해석과 개입의 여지를 남겼다. 내밀하여 자칫 지루할 수 있을 대담이 로맹 가리와 프랑수아 봉디와 독자의 걸쭉한 수다로 확장되는 건 이 때문이다. 내 ‘자아’는 내게 어떤 구속도 하지 않네. 오히려 그 반대지. 노출 취향도 있고 불같은 기질도 있어. 이건지 저건지는 독자가 결정할 테지. 어쩌면 『밤은 고요하리라』는 로맹 가리가 ‘걸러서’ 묻고 답했을 법한 이야기라는 오해를 살 법하다. 하지만 ‘자아’의 간섭을 고까워하는 로맹 가리의 성격을 보노라면 그보단 이렇게 바꿔 읽는 편이 바람직하다. 호사가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자신이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질문도 답도 제3자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덕분에 로맹 가리는 자신의 온갖 경험과 지론을 이 책에 쏟아낼 수 있었다. 『밤은 고요하리라』에는 로맹 가리가 어린 시절 돈 때문에 남창이 되었을지 모를 이야기며 여자친구의 언니에게 마음을 품었던 이야기, 식당에서 아픈 척 무전취식을 하려다 실패한 이야기, 라디에이터와 정사를 벌이려던 이야기 등 어린 시절의 추억뿐 아니라, 프랑스 대사로 세계 각지를 돌던 이야기, 미국을 여행하던 이야기, 할리우드에서 영화 작업을 하며 만난 유명인들 이야기, 문학적 지론 등 온갖 이야기가 담겼다. 엉뚱하고 애틋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웃음과 고민을 동시에 자아내며 로맹 가리의 진실한 면모를 보여준다. 난 식당에 들어가 일단 잔뜩 배를 채우고 간질 발작이 일어난 척하기로?이미 여러 번 해본 수법이었지?단단히 결심하고 집을 나섰지. 다른 손님들을 배려해서 계산서 따윈 신경 쓰지 않고 그곳에서 나를 실어 나가도록 말이지. 두세네에서 한 번 해봤는데 통했지. 그리고 피에 드 코숑에서도 한 번 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어. 간질 발작을 일으키면서 계산대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나도 모르게 “아야, 빌어먹을!”이라고 소리쳤거든. 난 그 집에 시계를 맡겨야 했고, 다음 날 글릭스만이 돈을 지불하고 찾아왔지. 드골, 헤밍웨이, 잭 케루악, 존 포드, 빌리 와일더…… 로맹 가리가 전하는 실제 인물들의 흥미로운 비화 로맹 가리는 자유프랑스 시절부터 샤를 드골과 친분을 맺어 괴뢰 비시정부에 맞섰고, 이후에는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스위스, 미국, 볼리비아 등 여러 나라를 돌며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작품을 집필했고,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20세기폭스사의 제작자인 대릴 재넉 같은 할리우드 “거물”과도 교유했다. 『밤은 고요하리라』는 로맹 가리의 이러한 경험의 총체인 책이다. 라퐁텐, 앙드레 말로, 잭 런던, 잭 케루악,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조지프 콘래드 등의 문학작품에 대한 담론은 물론이고, 샤를 드골, 로널드 레이건, 조지프 매카시, 윈스턴 처칠 등 정치적 인물들과 얽힌 일화, 프랭크 시나트라, 콜 포터, 빌리 와일더, 존 포드, 그루초 막스 등 미국에서 예술계 인사들을 겪은 이야기까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이야기들이 로맹 가리 자신의 입으로 펼쳐진다. 로맹 가리의 걸걸하고 냉소적인 말투가 사회적 무게를 던 명사들의 노골적인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헤밍웨이는 평생 강한 헤밍웨이를 연기했지만 그가 내면에 어떤 두려움, 어떤 불안을 감추고 있었는지는 신만이 알지. 그는 자신의 배역을 마초주의 위에 세웠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고 나는 생각하네. 1943년인지 1944년인지 이젠 잘 기억나지 않지만 런던엔 매일 밤 폭격이 쏟아졌는데, 폭격 와중에 난 친구 하나를 잃었네. 그래서 병원들을 돌아보았지. 세인트조지병원에는 복도며 탁자 위며 할 것 없이 곳곳에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네. 그리고 쉬지 않고 새로운 부상자들이 들이닥쳤지. 죽어가는 자들이……. 그때 불현듯 비옷 차림의 거인이 보였네. 이마에 피가 흥건하고 극적인 미군 장교들의 부축을 받은 극적인 출현이었지. 헤밍웨이였네. 그는 등화관제 때 지프차 사고를 당해 두피가 패는 상처가 났을 뿐 무사했지. 그가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아가며 외쳤네. “난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난 어니스트 헤밍웨이요! 날 치료해주시오! 난 부상을 입었어요! 나 좀 치료해주시오!” 주위에는 죽어가는 진짜들이 있었네…….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열네 살 소년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 경이로운 생의 비밀을 일러스트와 함께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