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작품영어로 쓰인 멋진 소설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어로 시대를 읽는다' 시리즈는 다양한 영문 소설을 읽으며 영어를 공부하는 좋은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영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고 이를 이해하면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마지막까지 읽을 수도 있습니다. 영어원서를 보는 것은 어휘력과 이해력을 키워주고 문화에 대한 정보 또한 얻을 수 있습니다. 고전 원작을 읽어보며 이 시대의 문화를 흠뻑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복도 맨 끝 방 :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5> 프리먼의 단편 중에서 최근에 가장 많이 재조명되는 작품 중에 하나. 화자의 심리에서 억압을 읽어내는 페미니즘 시각이 그 일례다. 초자연성에 심리 묘사를 효과적으로 입혔다는 평을 받는다. 월세나 하숙비가 가장 저렴한 복도 맨 끝 방에서 살아오면서 스스로 실패자라고 푸념하는 화자. 이번에는 건강을 위해 광천수가 나는 마을에 하숙을 구하지만 역시나 (더구나) 3층의 복도 맨 끝 방이다. 이곳에서 화자는 밤마다 기이한 경험을 하다가 감쪽같이 실종된다. 화자에게 하루에 하나의 감각만 허용되는 과정은 감각을 차단하거나 방해하는 최근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버드 박스」 등을 떠올리게 한다. <책 속에서>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 제닝스 부인. 꽤 존경받는 여자다. 자칭 귀부인이라고 할 만한데, 소싯적에 그런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고, 여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결혼도 잘 했다. 약종상이었던 남편은 상인을 통틀어 가장 온화한 남자였다. 남편의 가게는 록턴의 큰길 모퉁이에 있었다. 나는 록턴에서 태어났고, 남편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부모님은 내가 짧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돌아가셨고, 혼자 남겨진 내게 피붙이라곤 없다. 나는 약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약종상을 직접 꾸려갈 능력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약 대신에 독약을 주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 엄청났다. 그 결과 큰 손해를 감수하고서 가게를 처분해야 했고, 그렇게 해서 손에 쥔 5천 달러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진 전부였다. 그 돈으로는 내가 안락하게 살기에 부족했으니 돈벌이를 알아봐야 했다. 처음에는 교직을 생각했으나, 내가 더 이상 젊지 않은데다 학창시절 이후로 교수 방식이 변하기도 했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하숙을 치는 것이었다.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남서향 방·장미 덤불에 부는 바람·벽 그림자·길 잃은 유령·빈터·복도 맨 끝 방 | 바톤핑크 고딕문학 총서 006> 손꼽히는 고딕 작가이자 초기 페미니스트로서 재조명되는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단편 6편을 수록했다. 「남서향 방」 「루엘라 밀러」는 사이킥 뱀파이어, 「장미 덤불에 부는 바람」과 이번에 소개하는 「남서향 방」은 유령 단편이다. 이 단편들은 뛰어난 고딕 소설로 꼽히는데, 프리먼은 집이나 방 같은 특정 공간에 여성을 배치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결합하는 방식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미혼인 소피아와 아만다 자매 그리고 이들의 조카 플로라는 뜻하지 않게 대저택을 상속받는다. 이들은 대저택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숙을 치고, 네 번째 하숙인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이 저택은 유서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곳이다. 새로 하숙을 놓은 남서향 방은 최근에 자매의 이모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이 저택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이다. 그런데 이 남서향 방에 하숙인을 들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장미 덤불에 부는 바람」 영어권 앤솔로지에 자주 실리는 고딕 유령 단편이다. 레베카 플린트는 조카를 데려가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온다. 죽은 언니의 딸 아그네스는 열여섯 살 소녀로 아버지 존 덴트마저 여의고 의붓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레베카는 언니가 죽고 얼마 뒤 재혼한 형부마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조카를 보러오지 못했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해보니 레베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묘한 분위기다. 모두가 알고 레베카만 모르는 비밀. 그 비밀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존 덴트 부인 즉 아그네스의 계모. 그 비밀을 알려주려는 초자연적인 장미 덤불의 바람……. 「벽 그림자」 프리먼이 대표적인 고딕 작가지만 부드러움과 밋밋함의 경계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다. 고딕소설이 피 튀기는 호러와는 거리가 있지만(또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프리먼의 유령들은 퍽 온건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벽 그림자」는 프리먼의 유순한 유령 중에서는 공포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그림자(들)를 보여준다. 글린 가의 2남 3녀 형제 중에서 막내 에드워드가 갑자기 죽는다. 남자형제 즉 헨리와 에드워드가 격한 말다툼을 주고받은 직후에 생긴 일. 세 자매는 에드워드의 죽음에 헨리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헨리가 과연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지 가늠해보면서 공포감에 휩싸인다. 이 공포감은 벽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로 극대화된다. 「길 잃은 유령」 호러 장르에 들어온 유령이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을 더 돋운다면? 프리먼의 유령들은 슬픔, 난처함 같은 감정을 더 강하게 일으킨다. 이번에 소개하는 「길 잃은 유령」에선 슬픔이 주된 감정이다. 아동 학대의 피해가 의심되는 여자아이가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어린 유령은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안쓰러운 행색과 목소리로 엄마를 찾는다. 집과 방이라는 공간, 사회적 약자인 등장인물(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과 힘없는 아이),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방식인 하숙 그리고 초자연적 현상. 프리먼 특유의 요소들이 잘 짜여있는 단편이다. 「빈터」 뉴잉글랜드의 색채를 생생한 필치로 전달하는 프리먼답게 이번에도 타운센드 집안을 중심으로 기묘하고도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고딕 소설의 분위기에 녹여낸다. 타운센드 가족은 이상하리만큼 좋은 조건으로 보스턴에서 저택을 구입한 후 그곳으로 이주한다.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 특정 공간으로 프리먼이 이번에 선택한 곳은 빈터다. 고딕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린 반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backstory)는 다소 갑작스럽고 작위적이어서 아쉽다. 「복도 맨 끝 방」 프리먼의 단편 중에서 최근에 가장 많이 재조명되는 작품 중에 하나. 화자의 심리에서 억압을 읽어내는 페미니즘 시각이 그 일례다. 초자연성에 심리 묘사를 효과적으로 입혔다는 평을 받는다. 월세나 하숙비가 가장 저렴한 복도 맨 끝 방에서 살아오면서 스스로 실패자라고 푸념하는 화자. 이번에는 건강을 위해 광천수가 나는 마을에 하숙을 구하지만 역시나 (더구나) 3층의 복도 맨 끝 방이다. 이곳에서 화자는 밤마다 기이한 경험을 하다가 감쪽같이 실종된다. 화자에게 하루에 하나의 감각만 허용되는 과정은 감각을 차단하거나 방해하는 최근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버드 박스」 등을 떠올리게 한다.
<빈터 :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3> 뉴잉글랜드의 색채를 생생한 필치로 전달하는 프리먼답게 이번에도 타운센드 집안을 중심으로 기묘하고도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고딕 소설의 분위기에 녹여낸다. 타운센드 가족은 이상하리만큼 좋은 조건으로 보스턴에서 저택을 구입한 후 그곳으로 이주한다.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 특정 공간으로 프리먼이 이번에 선택한 곳은 빈터다. 고딕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린 반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backstory)는 다소 갑작스럽고 작위적이어서 아쉽다. <책 속에서> 타운센드 가족이 다른 도시로 이주할 거라는 소식이 타운센드 센터에 널리 알려졌을 때 큰 흥분과 실망이 일었다. 타운센드 집안의 이주는 도시 자체의 이동과 맞먹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타운센드 조상들은 일백년 전에 이 마을을 세웠다. 1대 타운센드 집안은 “표범 간판”으로 알려진, 사람과 짐승을 위한 노변 여인숙을 운영했었다. 표범을 밝은 파란색으로 칠한 간판은 아직까지 남아서 현재 타운센드 집의 정문에 잘 보이게 붙어 있다. 지금의 타운센드 가계 다시 말해 데이비드는 마을 잡화점을 운영해왔다. 그의 아버지 세대에서 타운센드 센터를 관통하는 철도가 생긴 이래 여인숙은 사라졌다. 개발 과정에서 가업을 포기해야 했던 가족은 대형 잡화점을 여인숙 다음의 가업으로 택했다. 잡화점이 여인숙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모든 손님들이 단기체류자들이었고 침실을 요구하는 법이라고는 없이 설탕과 밀가루통과 대구(생선) 궤짝 위에 자리를 잡는 것으로 휴식을 취하며, 있는 음식을 한입 두입 먹거나 건포도, 각설탕, 크래커, 치즈 따위를 무익하게 축내는 것으로 요기를 대신했다는데 있다.
<길 잃은 유령 :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2> 호러 장르에 들어온 유령이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을 더 돋운다면? 프리먼의 유령들은 슬픔, 난처함 같은 감정을 더 강하게 일으킨다. 이번에 소개하는 「길 잃은 유령」에선 슬픔이 주된 감정이다. 아동 학대의 피해가 의심되는 여자아이가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 어린 유령은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안쓰러운 행색과 목소리로 엄마를 찾는다. 집과 방이라는 공간, 사회적 약자인 등장인물(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과 힘없는 아이),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방식인 하숙과 임대 그리고 초자연적 현상. 프리먼 특유의 요소들이 잘 짜여있는 단편이다. <책 속에서> 존 에머슨 부인은 바느질감을 가지고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다가 로다 미저브 부인이 길을 따라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그 걸음새와 머리의 기울기로 미루어 자기 집 대문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또한 로다 미저브 부인의 전체적인 태도에서 보이는 특징—목 앞으로 내밈, 어깨의 빠른 들썩거림—으로 미루어 중요한 뉴스를 가져왔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로다 미저브는 언제나 뉴스거리가 생기자마자 그것을 입수했고 보통은 그녀가 제일먼저 그 뉴스를 전해주는 인물이 존 에머슨 부인이었다. 두 여자는 미저브 부인이 사이먼 미저브와 결혼하고 이 마을로 와 살기 시작한 이래 친구로 지내왔다.
<벽 그림자 :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1> 프리먼이 대표적인 고딕 작가지만 부드러움과 밋밋함의 경계에서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다. 고딕소설이 피 튀기는 호러와는 거리가 있지만(또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프리먼의 유령들은 퍽 온건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벽 그림자」는 프리먼의 유순한 유령 중에서는 공포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그림자(들)를 보여준다. 글린 가의 2남 3녀 형제 중에서 막내 에드워드가 갑자기 죽는다. 남자형제 즉 헨리와 에드워드가 격한 말다툼을 주고받은 직후에 생긴 일. 세 자매는 에드워드의 죽음에 헨리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헨리가 과연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지 가늠해보면서 공포감에 휩싸인다. 이 공포감은 벽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로 극대화된다. <책 속에서> “에드워드가 죽기 전날 밤에 서재에서 헨리와 에드워드가 얘기를 나누었어.” 캐롤라인 글린이 말했다. 그녀는 지긋한 나이에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로 굳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다. 그녀의 말투는 표독스럽지는 않지만 몹시 심각했다. 그녀의 동생 레베카 앤 글린은 뽀글뽀글 부풀린 잿빛 머리칼 사이로 통통하고 붉은 혈색의 얼굴을 하고서 언니의 말을 수긍하듯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넓게 주름이 잡힌 검은 명주옷 차림으로 소파 구석에 앉아서, 언니 캐롤라인에게서 언니 스티븐 브리검 부인을 향해 겁먹은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한때 에마 글린이었던 스티븐 브리검 부인은 가족 중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고, 화려하게 농익은 매력으로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풍만한 자태로 꽉 채워진 커다란 안락의자가 부드럽게 앞뒤로 흔들리는 동안, 검은 명주옷이 살랑거렸고 가장자리 주름 장식이 가볍게 하늘거렸다. 죽음의 충격조차(그녀의 동생 에드워드가 그 집에 시체로 누워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침착한 태도를 방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에드워드는 막내였고, 그를 몹시 아끼던 그녀였지만 시련의 물결 한복판에서도 그녀는 위신을 잃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삶과 한결같은 자태의 당당함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왔다.
<남서향 방 :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10> 「남서향 방」은 바톤핑크에서 소개하는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세 번째 단편이다. 「루엘라 밀러」는 사이킥 뱀파이어, 「장미 덤불에 부는 바람」과 이번에 소개하는 「남서향 방」은 유령 단편이다. 이 단편들은 뛰어난 고딕 소설로 꼽히는데, 프리먼은 집이나 방 같은 특정 공간에 여성을 배치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결합하는 방식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미혼인 소피아와 아만다 자매 그리고 이들의 조카 플로라는 뜻하지 않게 대저택을 상속받는다. 이들은 대저택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숙을 치고, 네 번째 하숙인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이 저택은 유서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곳이다. 새로 하숙을 놓은 남서향 방은 최근에 자매의 이모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이 저택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이다. 그런데 이 남서향 방에 하숙인을 들이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 “액튼에서 온다는 그 선생님 오늘 도착할 거야.” 언니인 길 소피아가 말했다. “그런다네.” 동생 길 아만다가 맞장구를 쳤다. “남서향 방을 주기로 했어.” 소피아가 말했다. 아만다는 의혹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설마 뭐?” 소피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동생보다 날카로웠다. 둘은 평균 키보다 작고 뚱뚱했지만 아만다는 군살이 늘어진 반면에 소피아는 탄탄했다. 아만다는 헐렁하고 낡은 모슬린 (무더운 날이었다) 옷을 입었고, 소피아는 풀을 먹이고 빳빳하게 만든 캠브릭(얇고 고운 면사나 아마사로 얇게 만든 흰색의 평직물—옮긴이)을 자신의 위압적인 몸에 두르고 비타협적으로 위까지 호크를 채웠다. “나는 몰랐지만 그 선생이 그 방에서 자지 않겠다고 할 거야. 해리엇 이모가 얼마 전에 거기서 돌아가신 걸 안다면.” 아만다가 말을 더듬었다.
<장미 덤불에 부는 바람 : 프리먼 환상문학 단편선 |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007> 영어권 앤솔로지에 자주 실리는 고딕 유령 단편이다. 레베카 플린트는 조카를 데려가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온다. 죽은 언니의 딸 아그네스는 열여섯 살 소녀로 아버지 존 덴트마저 여의고 의붓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레베카는 언니가 죽고 얼마 뒤 재혼한 형부마저 세상을 떠났지만 그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조카를 보러오지 못했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해보니 레베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묘한 분위기다. 모두가 알고 레베카만 모르는 비밀. 그 비밀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존 덴트 부인 즉 아그네스의 계모. 그 비밀을 알려주려는 초자연적인 장미 덤불의 바람……. <책 속에서> 포터스 폭포에서 강 맞은편에 있는 포드 빌리지, 이곳엔 기차역이 없다. 그래서 이곳에 가는 방법은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얕은 여울”(포드; ford)을 건너고 나룻배를 이용하는 것 밖에 없다. 레베카 플린트가 가방과 점심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기차에서 내렸을 때 나룻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 작은 가방이 안전하게 배에 오르자 그녀는 빠르고 순조롭게 개울을 건너기 시작하는 나룻배에 뻣뻣하고 꼿꼿하며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배에는 말 한필이 끄는 시골 경마차 한 대가 있었는데, 말은 불편한지 갑판을 앞발로 찼다. 가까이서 말 주인이 소처럼 멍한 표정으로 담배를 씹으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을 보고 있었다. 레베카 옆에서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가 은근히 호기심어린 눈으로 레베카를 계속 주시했다. 여자 가까이에는 그녀의 남편 그러니까 땅딸막하고 무뚝뚝한 남자가 서 있었다. 레베카는 그 부부한테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호리호리하고 창백했다. 독신여성이면서 기혼여성의 아직 깊지 않은 주름과 표정을 지녔다고 할까. 그녀는 거의 무의식중에 어깨 숄을 벗어서 그것이 마치 어린아이인양 돌돌 말더니 왼쪽 엉덩이춤의 캔버스 백(두꺼운 마, 아마, 목면으로 만든 핸드백이나 손가방—옮긴이) 속에 집어넣었다. 그녀에겐 삶에 반대하듯 찌푸린 인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으나 이것은 삶을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라기보다 완고한 아이로 간주하는 어머니의 찌푸림이었다.
<루엘라 밀러 : 사이킥 뱀파이어 걸작선 | 아라한 호러 서클 082> 「루엘라 밀라」는 전통적인 뱀파이어와는 다르다. 흡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희생양에게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몬스터보다는 은유적 뱀파이어에 더 가깝다. 물론 루엘라 밀러가 희생자들을 “호리는” 능력은 초자연적인 범주에 들어있긴 하다. 한 마을에서 악명과 함께 공포와 전율로 기억되는 여자, 루엘라 밀러는 자신의 주변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돌봐준 헌신적인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간다. 그들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루엘라뿐이다. 고딕 문학의 전통에서 여성 뱀파이어의 계보를 이으면서 흡혈보다는 착취와 억압의 관점에서 주목도를 높인 작품이다. 사이킥 뱀파이어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다. <책 속에서> 마을의 거리 인근에 ‘루엘라 밀러’라는 악명 높은 여자가 살았다는 단층집이 있었다. 그녀가 죽은 지 오래고, 아주 옛날의 위험을 통해서 이제는 제대로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더 분명해진 견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얘기를 제법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루엘라 밀러와 동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의 격한 전율과 광적인 공포가 남아 있었다. 그 낡은 집을 지나칠 때, 젊은 사람들은 몸서리를 쳤고, 아이들은 빈집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처럼 그 집 주변에서는 절대 놀지 않았다. 옛 밀러의 집에는 유리창 하나 깨지지 않았다. 그 창문에 에메랄드빛과 파란빛 아침 햇빛이 반사되었고, 잠겨있지 않은 현관문의 늘어진 빗장은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었다. 루엘라 밀러가 죽은 뒤, 그 집과 바깥세상의 머나먼 은신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했던 혈혈단신의 노파를 제외하고, 그 집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 어느 친척이나 친구보다도 오래 살았던 그 노파가 그 집에 머문 것은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뒤, 아침에도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 건장한 이웃들이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침대에서 죽어있는 노파를 발견했다. 그녀의 사인에 대해 음산한 속삭임이 오갔다. 시체의 얼굴에 드러난 극심한 공포의 표정이 떠나가는 영혼이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보여준다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정정하고 다정했던 노파가 일주일 만에 죽었으니,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였다. 목사는 미신의 죄악을 은근히 힐난하며 엄숙하게 설교했다. 그러나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다. 차라리 구빈원에서 살았으면 살았지, 그 집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을 들은 부랑자들도 근 오십 년 동안 미신적인 공포로 얼룩진 그 집의 낡은 지붕 아래서 피난처를 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