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 독서법> 한국 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하나의 뜨거운 예감 (문지문학상 심사평) 소설의 독자가 사라진 시대의 소설의 운명을 점치는 소설 (김준성문학상 심사평) 소설에 새겨진 운명적 DNA, 그 국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젊은작가상 심사평) “히치하이커 중 한 명은 흑인이고 다른 한 명은 백인이라면 당신은 누굴 태우겠어?” 이민자, 홈리스, 유색인…… 배제된 이들의 삶 치밀한 각도로 비춰내는 유럽의 민낯 세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소설적 실험으로 구현해내는 김솔의 세번째 단편집 『유럽식 독서법』(문학과지성사, 2020)이 출간되었다.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이자 표제작인 「유럽식 독서법」을 비롯해 총 여덟 편의 수록작 제목 앞에는 소설의 배경이 된 국가명이 제시된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그리스와 알바니아까지 동서를 가로지르는 유럽이 이번 소설집의 주 무대이다. 김솔은 유럽의 전형적 낭만 이미지를 걷어내고 유색인, 이주노동자, 빈민 등의 차별 문제를 다양한 신화나 종교적 소재와 연결하여 여러 갈래의 서사로 구현한다.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유럽을 낯선 방식으로 직시하도록 하지만 결국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부정과 불행을 불쾌하지 않은 유머로 풀어내며 끝내 희망의 자리를 짐작하게 하는 김솔 소설의 힘이, 겨우내 집 안에 갇힌 우리에게 새로운 봄을 상상하게 해주리라 기대한다. “오랫동안 전 소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작가가 되어 어쭙잖은 글을 쓰게 되면서, 제가 소수보다는 소수를 부당하게 다루는 다수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의도는 희망의 어두운 부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 희망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밝히고 싶네요.”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오해와 갈등을 막기 위해 필요한 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의심할 수 있는 여유였다” 현실과 망상, 원본과 아류의 경계 속에서 진짜 ‘진품’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 신인 작가의 등장은 한국 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하나의 뜨거운 예감이다.” 2013년 제3회 문지문학상(구 웹진문지문학상)에서 수상자인 김솔을 소개하며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신인의 패기와 새로움을 넘어서 소설 쓰기의 근원적 성찰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솔은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직후부터 문단에서 꾸준히 눈길을 받아온 작가이기도 하다. 나이 마흔에 등단한 늦깎이 신인이었지만 갓 등단한 작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구성력과 동서고금의 정전들과 학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이질적인 기원을 가진 다종다양한 문장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노련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쓰기’에 대한 깊은 사유와 사회 전반에 대한 성찰적 시각이 독특한 실험적 기법으로 구현되어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문학과지성사, 2014)에 묶였다. 이 열 편의 소설을 통해 김솔 개인의 작가적 역량뿐만 아니라 한국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낼 하나의 가능성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 전태일’ 시대를 그려내는 장인(匠人)의 문법 잘 쓴 글이란 잘 벼린 칼처럼 서슬 퍼런 날을 품고 있어서, 억압하고 최면을 걸고 생명을 줄이는 모든 권력으로부터 불순한 허위들을 잘라내어야 하며 벌거벗은 자아와 부조리한 세상이 종이날 위에서 진검승부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다짐과 더불어, 독서 행위를 통해 값싼 동정과 감동과 교훈을 기대하는 독자들을 얼음 덮인 호수 속으로 빠뜨리고 숨이 목에 걸릴 때까지, 그래서 작가의 의도나 목소리 따윈 철저하게 무시되고, 오로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어 삶과 화해하고 위무하게 될 때까지 다리를 붙잡고 호수 바닥으로 빠져드는 물귀신이 되는 불온한 꿈을 꿉니다._김솔, 「징후들-나는 작가다」(『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 김솔은 위의 인용된 지면에서 “작가는 현실과 과거의 노예가 아니라 꿈과 미래의 시민이 되어야 한다”(「징후들」)고 말한 바 있다. 언뜻 듣기에 구시대적인 강박처럼 들릴 수도 있겠으나 그의 소설은 오히려 기존의 세태소설과 거리가 멀다. 김솔은 세계에 대한 뚜렷한 관점과 소설관을 바탕으로 노동 중심적 담론을 넘어서 현 시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소재로 하여 고도로 계산된 세태소설을 선보인다. 세태소설 앞에 ‘고도로 계산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 소설들에서 인용되거나 모티프가 된 방대한 자료와 해박한 지식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는 카프카(「변신」), 보르헤스(「소설 작법」), 미시마 유키오(「은각사隱刻寺」) 등이 등장하는 동시에, 인류학(「주석본: 아주 오래된 여자」)과 천문학(「소행성 A927」), 생물학(「2003년 줄리엣 세인트 표류기」), 지역학(「은각사隱刻寺」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향장학(「피그말리온 살인 사건」) 등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사 속에서 긴밀하게 스미고 짜여 병적인 일상인의 면면들로 드러난다. 피그말리온 신화와 백설공주의 거울 모티프를 패러디해서 한국의 외모지상주의와 대중문화의 외설성을 통쾌하게 폭로하는 「피그말리온 살인 사건」,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소설」이라는 가상의 작품을 패러디해서 한국의 출판계와 독서 시장을 풍자하는 「소설 작법」, 그리고 육체와 관능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생명정치화’ 경향에 대한 경고로 읽어도 좋을 「2003년 줄리엣 세인트 표류기」 등이 이러한 계열에 속한다. 작가는 원재료의 출처를 밝히되, 자신의 기예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그것들을 한국의 상황 속에 적절하게 변형하여 삽입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앞서 2010년 최제훈이 출간한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으나, 최제훈이 이러한 브리콜라주를 통해 완성도 높은 메타서사를 구축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김솔은 좀더 기괴하고 풍자적인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변이의 조짐: 언어적 조형술의 탄생 내가 공들여 만든 가방이 명품은 아닐지라도 진품인 것만은 확실하오. 물론 진품이라고 모두 명품은 아닐 거요. 반대로 명품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진품이 아닌 것들도 많소. 진짜 현실에서도 가짜들은 필요한 법이오. 하지만 우리가 위험해지는 건 아니고,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면서 진짜 권력을 행사할 때 비로소 위험해지는 것이라오._「소설 작법」에서 작가가 재료들을 이리저리 붙이고 덧대어 뭔가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짜깁기 공법’으로 소설을 쓴다 해서 김솔 소설의 문법을 수단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번 소설집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이 지적하듯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가 네덜란드인들의 생활 풍속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거나 ‘「피그말리온 살인 사건」이 피그말리온 신화를 통해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한국인들의 왜곡된 욕망을 폭로하고 있다’는 식의 예단은 그의 소설에 썩 맞지 않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는 이 작품이 다루는 네덜란드인의 세밀한 생활상 때문에만 네덜란드적인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네덜란드어로 씌어진 후에 한국어로 번역한 듯이 느껴진다. 한국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많은 절들과 순수 우리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어들, 그리고 마치 번역하기 힘든 것을 어쩔 수 없이 늘여서 우리말로 옮겼다는 듯이 길어지는 문장, 이별하는 와중에도 음식 값을 걱정하는 칼뱅주의적 깍쟁이들의 감수성 등 그 자체로 네덜란드다. 또 다른 예로 「피그말리온 살인 사건」에 사용된 107개나 되는 생경한 단어와 그에 덧붙는 각주들은 성형수술 후의 안면에 남아 있는 부자연스런 흔적을 표현한다. 작가 김솔은 언어를 재료로 다루되 조형 예술의 논리에 따라 다룬다. 그리고 이런 식의 기예는 그간 많은 이들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내용과 형식의 조화’, 그 식상한 유기체론의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변이’에 가깝다. 왜냐하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또 한 번 변태를 일으키려는 장면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_문학평론가 김형중 김솔은 이제 더 이상 물적 토대와 상부 구조의 관계로만 설명해내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현실 세계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묘사한다. 이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수많은 정보와 문화 코드들 속에서 ‘진짜 진품’(혹은 진짜 실체)을 찾고 이야기로 직조해내는 길고 까다로운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김솔의 ‘소설 공방’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올가을 소설을 탐독할 많은 독자들을 설레게 할 것이다.
<보편적 정신> 신비로운 붉은 페인트, 거대한 유기체인 회사 그리고 비밀스러운 가계도…… 마침내 추출되는 보편적 정신 한국문학의 상상기계, 김솔에게서 탄생한 연금술 같은 이야기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망상,어』 등으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 준 소설가 김솔의 신작 장편소설, 『보편적 정신』이 <오늘의 젊은 작가> 열여덟 번째 책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작가가 확보한 독보적 스타일과 상상력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보다 묵직한 질문으로 진화한다. 붉은 페인트의 비밀은 무엇인지, 연금술의 비법은 무언지, 회사는 왜 소멸해 가는지…… 이 모든 의문은 인간의 ‘보편적 정신’이라는 답을 향해 육박해 나아간다. 우리를 패배시킬 거라는 그 원칙은 뭔가? “우리를 패배시킬 거라는 그 원칙은 뭔가?” 이 질문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간의 윤리와 가치를 역설하며 고문을 견디는 윈스턴 스미스에게 오브라이언이 던지는 질문이다. 오브라이언은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는 당의 신봉자이며, 윈스턴은 당은 결국 인간의 정신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에 맞선다. 『보편적 정신』은 붉은 페인트의 비밀로부터 시작된 한 회사의 100년 역사를 통해 오브라이언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 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채무 의식,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감” 같은 것들이겠지만, 소설은 해설을 최대한으로 미루고 숨기는 방식으로 100년을 직조해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답을 찾으려는 독자에게 『보편적 정신』은 오브라이언의 입을 빌려 다시 묻는다. 자네는 자네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김솔이 소설로써 제기하는 질문의 외적 형태는 조지 오웰에서 비롯되었으나, 그것의 내적 구성은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가깝다. 실제 『보편적 정신』의 복잡하고 다난한 가계도, 붉은 페인트와 연금술을 둘러싼 비밀, 100년 가까이 지속된 회사의 역사 등 소설은 독특한 알레고리와 메타포로 우리가 우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끝내 덧붙이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작동하는 붉은 페인트 회사는 개인과 조직,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알레고리는 기존의 소설적?인문학적 상상과는 다른 질감의 상상 체계를 만든다. 이러한 체계를 제대로 즐기며 관통해 나갈 열쇠는 직관력, 상상력, 인내력일 테다. 감히 독자에게 함부로 요청할 수 없는 이러한 능력치를 『보편적 정신』은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오브라이언의 질문에서 윈스턴의 답변 사이에서, 연금술의 포획된 원천 물질처럼 『보편적 정신』을 통과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인간이 될 ‘특수한 영감’을 얻는다.
<마카로니 프로젝트>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 김솔 신작 장편소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솔의 신작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가 출간되었다. 김솔은 등단작부터 “발상도 좋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좋다”(심사평)라는 평을 들으며, 특유의 상상력과 입담으로 새로운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감케 했다. 그리고 등단 후 6년 동안 기발하고 밀도 높은 두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쉬지 않고 펴내며, 한국문학의 ‘상상 아카이브’임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다. 그의 세번째 장편소설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회사란 무엇인지, 이 세계에서 온전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윤리가 아닌 생존의 영역에서 날카롭게 묻는 소설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김솔 소설 ‘시즌 1’의 하이라이트가 될 작품이다. 회사의 선고에 맞서 함께 파멸할 것인가 끝내 이곳에 남아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무기회사가 영업 실적 부진을 이유로 이탈리아 피렌체 공장의 폐쇄 결정을 내린다. 이에 유럽 지역 영업본부장과 피렌체 공장장은 각 부서의 팀장들을 비밀리에 모아 직원들의 동요나 저항 없이 순조롭게 공장을 폐쇄하기 위한 계획인 ‘마카로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팀장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될 동료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들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도 은밀한 프로젝트에 동참함으로써 회사에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공장 폐쇄 발표를 접한 직원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거세다.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거나 집기를 약탈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팀장을 찾아가 동정심에 호소하기도 한다. 다가올 운명에 자포자기하며 최대한의 보상을 얻어 퇴사하려는 쪽과 어떻게든 공장 폐쇄를 막아야 한다는 쪽 사이의 팽팽한 다툼도 생긴다. 또한 공장 폐쇄 결정은 공장 인근의 식당이나 집 주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불행을 불러일으키는데…… 각자의 생존을 모색한 이들의 노력은 결국 어떻게 될까? 김솔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인물들을 몰아넣음으로써 질문 자체의 모순을 드러낸다. 즉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의 삶’을 도모할 때 어느 쪽이 절대선이거나 윤리적으로 우선한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김솔의 앞선 소설이 그렇듯 이 작품에도 피렌체라는 이국적인 공간과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등 다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소설의 배경을 낯설게 하고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거기서 생겨나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구조조정을 위한 은밀한 프로젝트에 속절없이 포박된 사람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비밀스러운 시선과 그들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질문 『마카로니 프로젝트』는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 폐쇄 선고와 그에 맞선, 혹은 그것을 충실히 이행해냄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 스스로가 2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해온 만큼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나, 각 부서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알력 싸움, 무엇보다 자신의 생계를 움켜쥔 회사라는 거대한 힘 앞에 각자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는 불합리성을 파헤치는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갑작스러운 선고를 접한 직원들의 심리가 사태의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뛰어난 심리소설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최근 전해진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 소식과 소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도 공교롭다. 회사의 기습적인 공장 폐쇄 발표로 수천 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협력업체 직원들과 공장을 중심으로 상권을 이루어 살아가던 사람들까지 생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재앙’이 시작되었는지 명확한 원인을 찾아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사실도 소설과 동일하다(소설의 후반부에 마카로니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인 유럽 지역 영업본부장조차 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음이 밝혀진다). 김솔은 오랜 직장생활과 소설가로서의 삶을 균등하게 병행하면서 회사라는,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외면할 수 없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누구보다 생생하고 절실하게 묻고 있다. 이 소설을 단순한 허구로 읽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솔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적이고 시니컬한 농담과 기발한 메타소설적 형식 실험 등도 여전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카로니 프로젝트』가 기이하지만 난해하다는 김솔에 대한 편견을 깨고 명민하고 날렵한 김솔의 소설세계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패스트 트랙이라는 사실이다.
<망상,어語> 독보적 스타일의 이야기꾼이 나타났다!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김솔의 상상 아카이브!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내기의 목적」이 당선되어 등단한 김솔의 기발한 ‘짧은소설’ 36편을 모은 『망상,어語』가 출간되었다. 김솔은 등단작부터 “패기 있는 작품” “발상도 좋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좋다”(심사평)라는 평을 들으며, 기존의 어느 작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던 기발한 소재와 이국적인 문체로 새로운 스타일리스트의 탄생을 알렸으며, 이후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연달아 수상하며 그 잠재력을 서서히, 그러나 놀라운 수준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오랜 습작기 때부터 채집해온 ‘세계의 믿지 못할 이야기’들을 특유의 몽환적인 문장들로 풀어낸 이번 짧은소설을 통해 ‘지금, 여기’가 바로 “글로벌 이야기꾼”(문학평론가 신수정)으로서 김솔이 위치한 가장 높은 곳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의 감각이 희미해진 당신에게 밀폐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잃은 당신에게 누군가를 사랑이라 부르는 당신에게 김솔은 소설의 시간과 공간, 국적, 심지어는 성별까지 뒤섞어버린 채 오롯이 ‘이야기하다’라는 행위 자체에 골몰한다. 대개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짐작되는 지점이 있는데, 김솔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모습을 헤아리기 어려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솔은 오로지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야기가 말해진 이후의 세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눈치보지 않고 세계를 사는 다양하고 기이한 사람들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김솔의 이러한 특징이자 장기는 36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망상,어語』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단편소설보다도 훨씬 짧은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비애와 회한과 유머와 감동을 동시에 담아내는 능력은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김솔은 엄연히 우리 주위를 살지만 어딘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받곤 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면서, 그들의 모습은 결코 유별난 것이 아니며 정작 이상한 것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이 세상이라고 역설한다. 작가 김솔이 들려주는 낯설지만 살아 있는 이야기 당신을 두근거리게 할 이야기 누구에게나 자신만 아는 망상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이따금씩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을 겪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누군가의 몸속에서 수술 도중 실수로 남겨둔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은 아닐까 상상할 수도 있다(「환각지통」). 아니면 어린 시절 사고로 미각을 잃은 남자에게, 사는 데 꼭 기억해야 하는 맛은 무엇일까 느닷없이 물을 수도 있다(「미각」). 혹은 가슴을 드러낸 채 수유중인 여자와 그 옆에 앉은 여자 사이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상상해볼 수도 있고(「브래지어」), 크리스마스이브에 재즈 바에서 홀로 춤추는 남자가 아내를 죽인 살인범은 아닐까 공상해볼 수도 있다(「춤추는 남자」). 어쩌면 김솔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강력한 우승 후보이면서도 다른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쯤 출발하는 것으로 고국 이라크의 현실을 알리고자 한 모하메드 압둘(「그들만의 올림픽」)이나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전자발찌를 드러내 보여야 했던 남자(「의심」)처럼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꿈과 유머와 망상을 차압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꾸어 말하면, 김솔은 당신이 말하지 못한 당신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것.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한 믿기 힘든 이야기, 작가 자신이 오랜 직장생활과 외국생활에서 경험한 웃지 못할 비애와 생경한 이야기들, 일러스트레이터 박순용의 강렬하고 신비로운 그림…… 여기에 김솔만의 미워할 수 없는 ‘망상’이 더해져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헤쳐나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통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그러니 한 번도 엉뚱한 망상에 빠져본 적이 없노라 자신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망상,어語』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없어서, 쓴다, 아니 두드린다. 변죽을 두드리면서, 내가 결코 편입될 수 없는 세계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한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이르려면 코끼리를 타는 수밖에 없다. 상상想像은 코끼리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행위다. 하지만 시계 소리와 모기의 날갯짓 소리 때문에 번번이 바닥으로 꼬꾸라진다. 시계 소리가 디지털이라면 모기의 날갯짓 소리는 아날로그다. 전자는 세계를, 후자는 존재를 상기시킨다. 결국 나는 방을 밝힌 채 침대에 눕는다.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리면서 꿈이 덮이지 않은 곳에만 모기가 내려앉기를 기도한다. 모기는 산 사람만을 좇는다. 죽은 사람을 좇는 건 파리다. 그리고 산 사람의 몸속에 알을 슬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모기가 파리보다 참을 만하다. 살을 긁다보면 어떤 대답이 떠오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중에서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어컨과 인터넷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잃은 당신에게 그 일부를 돌려준다. _‘시작하며’에서 책 속에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에 앞서 생명을 헌납한 동식물들이 석회암 동굴 같은 우리의 창자 속을 통과하면서 해탈하는 순간에 오도송悟道頌처럼 읊조린 게 방귀일 수도 있어요. 평생 인간이 먹어치우는 오십여 톤의 생명들 중에는 살아서 경전 한 구절 정도는 알아들었던 것들도 있지 않을까요? _「방귀」 결코 제 능력이 닿지 못해서 얻지 못하는 것을 두고, 마치 얻을 수 없는 것들은 하나같이 형편없는 것처럼 험담하는 자들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다. 속으로는 상대의 실패를 기대하면서도 겉으로는 존경과 복종을 다짐하는 자들의 표리부동에 L은 쉽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권력이 숙명을 만들고 자신은 그 과정만을 묵묵히 감내할 뿐이다. _「고독한 자들의 점심식사」 “원래 용서란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인간이 발명한 건 뭐지?” “그건 복수죠. 죄나 벌은 아니고.” _「춤추는 남자」 그를 전쟁터에 보낸 이는 우리였고 양팔이 잘린 그를 살린 이도 역시 우리였으므로 그에게 살아갈 용기를 줘야 하는 것도 우리가 아닐까. 비록 자신이 당시의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던지지는 않았더라도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고 그가 납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과의 전쟁에 참여한 이상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_「환각지통」 “사람들은 누구나 바닥을 딛고 일어나는 것이지 하늘을 붙잡고 일어나는 건 아니죠.” _「오디션」 어느 인간도 자신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고 명백한 죽음으로부터 삶의 의지가 건너오는 이상, 사랑이 일어나지 않는 삶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_「연꽃」 삶의 의지는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파동 에너지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건너오는 암흑 에너지이다. 에너지의 속도나 방향이 변할 때 사건이 일어난다. 그게 사랑이다. 그렇게 하찮기 때문에 인간에겐 너무 중요하다. _「연꽃」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세상의 이면, 두려움이 자라나는 그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잔잔한 일상을 끊임없이 흔드는 김솔의 농담들 ◎ 도서 소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 김솔만의 감각으로 그린 군상화 “이미 모든 책들이 책에 대한 책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모든 인간은 모든 인간의 꿈으로 빚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던 게 분명하다.” _p. 142 『기록』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8년 간, 두 권의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김솔이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아르테)을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은 2017년 ‘세계의 믿지 못할 이야기’들을 특유의 몽상적인 문장들로 풀어낸 짧은 소설 모음집 『망상,어語』에 이어 3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짧은 소설 모음집으로, 밀도 높은 현재성과 기발한 상상, 이국적인 인물과 문체 등 오직 김솔만이 선보일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김솔은 역사, 과학, 윤리, 종교, 철학, 신화 등 해박한 지식을 작품에 인용하여, 이 시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문학적으로 빚어내는 글쓰기를 지속해왔다. 특별할 것 없고 보편적일 수 있는 하나의 상황조차 역사적 사실과 접목해 문명적 흐름이라는 거시적 관점으로 옮겨와 현 시대를 조망하는 결정적 사건으로 빚어내는 데, 이런 전환의 힘은 김솔 소설만의 백미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작은 변화나 위협으로 얼핏 드러났다 사라지는 아이러니의 순간들은, 김솔의 작품에서는 그가 구축한 알레고리에 의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특히 이번 소설집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은 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장소와 인물 들이 등장하는 40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 시대가 필연적으로 품는 아이러니와 그 근원을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깊은 물 아래 잠들어 있던 괴물 같은 세상의 실상이 어느 순간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앞에 선 인물들은 진실 혹은 몽상, 어쩌면 그 어느 곳도 아닌 방향으로 나아간다. 우리의 일상이 균형을 잃는 순간 감지되었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을 통해 맞닥뜨리게 된다. 40편의 군상화 같은 이야기에서 겹쳐지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진실과 몽상 사이를 서성이는 인간, 김솔식 슈뢰딩거의 고양이 “굳게 닫힌 문은 침묵처럼 틈 없이 단단했고 어둠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모든 기억이 산산이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문 안쪽이 스스로 밝아지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성였다.” _ p. 304 「그녀 앞에서: 카프카의 「법 앞에서」변주곡」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속 인물들은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다르지만, 작가가 포착한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삶의 균열에 붙박여 있다. 그들은 일상이 기묘하게 흔들리며 틈을 벌리는 순간을 저마다 경험하는데, 이 작은 균열을 통해 본능적으로 ‘세상의 이면’을 감지한다. 아무도 직접 경험해본 적 없고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 장소인 그 미지의 영역은 김솔이 글쓰기를 통해 끈질기게 부딪혀온 경계, 지우며 나아가고자 했던 궁극의 가장자리와 맞닿아 있다.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은 이 경계를 마주한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내고 있는 이야기이자, 김솔 작가의 끊임없이 잔잔한 일상을 흔드는 ‘시도’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있는 한 걸음일 수도, 방향을 잃은 채 끝없이 헤매는 몽상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김솔은 인간이 ‘도저히 설명 할 수 없는 암흑과 고요(「여행」)’를 신의 이름으로 명명한다고 보았는데, ‘절대적인 것에 편의적으로나마 이름마저 붙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설명조차 할 수조차 없’고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언어를 통과해 인간의 인식 속에 안착될 때 실재보다 축소되는 것이 필연적이라면, 미지의 영역은 온전히 이해되지 못한 채 영원히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김솔의 관점은, 인간 인식의 필연적인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케 한다. 그렇기에 그 경계 앞에 주저앉아 조금도 나아가지 않기를 선택한 인물뿐만 아니라 거짓을 선택한 인물조차 김솔의 세계에서는 동등한 지위를 얻게 되고, 죽음과도 같은 미지의 벽 앞에 선 인물들은 모두 ‘살아남은 자’가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목소리에 따라 우리는 그 세계를 때로는 안개 속을 걷듯 몽환적으로, 때로는 귀엽고 발랄하게 여행하듯 통과하게 될 것이다. 허상 위에 지어진 세계를 향해 던지는 질문 “법적 공방은 먼저 흥분한 자들이 반드시 패배하는 게임이다. 상대가 틈을 보였다 싶으면 가차 없이 찔러대라. 대중이 보는 앞에서 서로에게 침을 뱉거나 욕설도 퍼붓고 신발도 벗어던져라. 그러면 대중은 당신들의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무의미한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것이며 당신들을 위해 기꺼이 싸워줄 것이다.”_ p. 168 「형제」 여덟 살 차이나는 쌍둥이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소녀(「복제」)와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의사(「가려움」)가 동원하는 과학적 사실부터 아내의 공공연한 배신을 끝까지 부정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복기하는 남자(「믿음」)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의 인물들은 역사적·과학적 사실과 신화까지 적극적으로 동원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인용한다. 김솔은 하나의 인물이 주장하는 바를 위해 방대한 학문적 자료와 지식을 아낌없이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덧붙이는데, 이는 무해한 진실이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개인의 감정에 동원되었을 때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당연하다 믿어왔던 사실들에 김솔이 만들어낸 작은 알레고리만으로도 예측 불가한 결말이 되어버린 40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었을 때쯤엔, 우리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었으나 쉽게 삭제된 모든 혼란을 직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역사는 이 다채로운 여러 개인의 욕망과 감정의 추동이 부딪히며 만들어진 궤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김솔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우리 한 사람의 생애보다 더 오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더 오래 존재할 문명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의심이다. 문명은 늘 옳은 방향으로 나아왔는가. 역사가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문명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더욱 가속화하는 이상기후,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과 같은 ‘새로운 징후들’은 이제 인간이 기존의 방식대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한계에 다다랐다는 증거는 아닌가. 그렇게 김솔은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탐색하면서 모든 방향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문 소개 평온함이란 권태나 허무처럼 불완전한 상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거기서 전쟁과 살인과 증오와 죽음이 태어나는 것이다. _ p.12 「생일」 동생이 태어난 뒤로 저는 갑자기 어른이 됐답니다. 누군가 강제로 제 등을 떠밀어 그런 상태에 밀어 넣은 것이에요. 그랬더니 그동안 제가 결코 시도해보지 않았던 행동과 사고를 하게 됐지요.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윤리적 기준을 이해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수긍하게 됐으니, 이 또한 여덟 살 차이 나는 쌍둥이 남동생의 존재만큼이나 놀라운 사실이었지요. _ p.19 「복제」 머리 위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우주의 역사에 대해 고작 1퍼센트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망원경을 통해 우주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무력한 개인과 광대무변한 신이 아닐까요? 인간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암흑과 고요를 어떤 자는 부처라고 일컫고 어떤 자는 여호와, 어떤 자는 알라, 그리고 어떤 자는 시바라고 일컫는 게 분명합니다. 절대적인 것에 편의적으로나마 이름마저 붙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인간은 늘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한다고 배웠습니다._ p.46 「여행」 비의 기세가 여전한데도 노인은 옷깃 한번 추스르지 않고 태연하게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자신의 눈엔 빗줄기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몸 또한 비에 젖지 않는 것처럼. 페루의 새들처럼. _ p.72 「이름」 백주의 한복판에서 참, 괴이한 광경을 보았어. 갑자기 흑단나무 널보다도 더 검고 납작한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바람 한 점 없었으니까, 더 가볍고 마른 것들에게도 기적은 얼마든지 가능했겠지— 빈 소주병보다 창백한 어떤 남자의 멱살을 붙들고 자신이 누워 있었던 짓무른 자리 위로 밀쳐내는 거야. 그림자는 남자의 호적상 나이보다도 더 오래 누워 있었다고 투덜거렸어. 그러니까 그림자와 남자는 견고한 스위치처럼 발목을 같이 쓰고 있어서 한쪽이 일어서면 한쪽이 쓰러지게 되어 있나 봐. 생은 좁고 무른 존재의 이유에 붙박여서 앞뒤로 불안하게 흔들리지. 그렇다고 뭐 특별한 이유가 있겠어? _ p.72 「그림자」 ‘재앙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모든 재난은 반드시 그것이 벌어질 전조를 알린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전조를 파악해서 재난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데, 그 능력은 대개 선천적으로 부여받지만 후천적으로 취득할 수도 있다고 한다. _ p.80 「재앙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 방법」 그녀는 마치 그 시간에 태어났거나 죽을 존재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눈까지 감았다. 그리고 존재 전체의 무게를 하이힐의 높은 굽에 싣고 팽이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천천히 중심을 잡았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마천루는 모두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거대한 아날로그시계 하나가 세상의 중심에서 지구를 돌리고 있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 그 사이에 우주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서 있었다. _ p.92 「나침반」 충분히 차이를 짐작하시겠지만, 유품이란 유산을 제외한 부스러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산 사람들에게 재산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저희에겐 유품이지요. 저희는 유품을 처리합니다. 죽은 자의 몸과 뼈도 유품에 해당합니다. _ p.101 「고독사」 그녀는 죽은 자처럼 사흘을 물 한 모금 넘기지 않고 골방에 박혀 어둠 속에서 잠만 잤다. 그리고 초저녁쯤 깨어나 마치 사흘 만에 갓난아이에서 어른이 된 것처럼, 또는 인간을 파멸시키기로 결정한 것처럼, 주위의 음식을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먹어댔다. 그녀는 먹는 동안 잠을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꾸준히 화장실을 드나들며 마치 변태를 시작한 뱀처럼 내장을 반복해서 비웠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탈진 상태가 되어 밤을 맞이했다. 그녀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잠 속으로 들어가 화석이 됐다. _ p.110 「첨단공포」 히틀러를 포함한 모든 독재자들의 주변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동조자가 그것이다. 세 부류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조자들은 대체로 정체가 모호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의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역사책에서도 그들이 전면으로 나타나는 페이지를 찾을 순 없다. 늘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며 끊임없이 자리를 바꾼다. 하지만 정작 모든 역사에서 대부분의 악행을 저지르고 반성 대신 화해를 강요하는 자들이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동조자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너무 익히 알려진 나머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은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_ pp.119~220 「회수」 낯익은 것들로부터 확실히 멀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내 머릿속에서 남미라는 단어를 발견해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머릿속으로 헤엄쳐 들어온 이상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생각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스스로를 설득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거부할 의사가 없는 이상 계획을 포기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 계획을 지지해줄 동지나 근거를 찾을 목적으로 나는 그 서점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_ pp.107~208 「서치」 호랑이와 흑인 소녀와, 소녀의 스케치북에서 빠져나간 동물들이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다면 굳이 불을 밝혀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왜냐하면 죽음은 대개 진실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우연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_ p.257 「크로키」 그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마리 로랑생을 위로했다. 그렇다고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폴리네르를 증오하고 싶진 않았다. 증오는 인과보다 목적이 더 치명적인 법이니까. 대신 그녀는 자신의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센강을 따라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어느 곳에 도착할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_ p.274 「다리」 나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굳게 닫힌 문은 침묵처럼 틈 없이 단단했고 어둠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 모든 기억이 산산이 부서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문 안쪽이 스스로 밝아지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성거렸다. 딱히 그곳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딱히 찾아가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젊음은 모든 생각과 행동의 완벽한 알리바이가 됐으므로 몇 차례의 사랑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의 삶이든지 간에 그것을 짊어지고 걸어간 것은 기묘한 상처들이었고 그것들이 쓰러진 곳에서 잠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니까. _ p.304 「그녀 앞에서: 카프카의 「법 앞에서」 변주곡」 "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 ◎ 도서 소개 “역사에 가정을 매다는 행위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망각과 거짓말 사이에서 진짜 로마니rromani를 만나다! 박해와 멸시의 대상이던 로마니의 역사 속으로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두 권의 소설집과 세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김솔이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로 신작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를 출선보인다. 2018년 초 두 권의 장편소설을 연달아 출간한 이후 1년 만에 펴내는 경장편소설이다. 독보적인 스타일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김솔은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다. 이국의 낯설고, 때로는 모호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작품은 장르적 실험과 독특한 질감의 상상 세계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왔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작품 세계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 매력을 더하는데,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가상의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우리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로마니의 왕, 퀴에크 가문의 연대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박해와 멸시의 대상이었던 로마니의 역사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로마니는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유랑 민족으로, 흔히 영미권에서는 집시,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 등으로 불린다. 집시는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스스로를 ‘사람’의 의미를 가지로 있는 롬(Rom) 혹은 로마(Roma)라고 부르는데, 국제집시연맹은 rrom, 혹은 rroma, rromani로 명칭을 통일하여 공식적인 서류나 회의석상에서 사용하고 있다(‘r’이 두 번 쓰인 것은 이탈리아의 로마나 루마니아와 혼동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집시라는 명칭은 인종 차별적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원치 않으나 여전히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인터넷 검색만 해보더라도 알 수 있다. ‘로마니’로 검색했을 때보다 ‘집시’로 검색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정보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칭에서부터 우여곡절이 많은, 정착할 곳 없이 떠도는 숙명을 지닌 그들의 역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파편적 기록들을 모아 소설로 완성해낸 이야기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우리의 얼굴은 또한 어떤 모습일지 함께 들어가보자. “관용은 없고 편견뿐인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과 귀”가 되어줄, 어느 로마니가家의 아주 특별한 기록 “현재란 과거의 결과물이나 미래를 길러내는 양분도 아니며, 오히려 미래의 결과물이자 과거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라고 생각하셨다. 어제의 삶은 오늘의 실수와 후회로 이미 파괴되었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내일이 기약되어 있으며, 꿈 때문에 인간이 퇴화하고 있다고 걱정하셨다.”_ p. 91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로마니의 역사, 특히 퀴에크 가문의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반적인 소설의 모습이 아닌, 작중 화자가 써내려간 역사책의 형식이다. 이 역사책에는 참고 문헌 대신 특이하게도 괄호의 문장들이 있다. “여기까지 읽은 자에게 영광을!”로 시작하는 이 괄호 안의 문장을 황제와 그의 가족들 앞에서 절대로 소리 내어 읽으면 안 된다고 화자는 밝히고 있다. 황제와 그의 혈족들은 문맹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일 수 없는 내용이 바로 이 괄호 안에 묶인 것이다.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가 아닌, 어쩌면 진실에 조금 가까운 이야기가 이 괄호 안에 있는 것일까. 조금은 특별한 형식의 이 기록물은 그 시작부터 독자들을 흡인력 있게 끌어당긴다. 이 책은 역사학자 보그단 마텔에 의해 기록된 셈 로만디의 과거와 현재의 기록이다. 셈 로만디는 로마니의 황제 플로린 퀴에크에 의해 루마니아 영토 안에 건설된, 전 세계 모든 로마니의 유일한 자치국이다. 그런데 역사학자 는 사실 거짓 신분이라고 화자는 책의 도입부에서 밝힌다. 선교를 위해 셈 로만디에 파견되었으나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역사학자라고 둘러댄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일보다 성서를 번역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던 그는 로마니의 현실과 그들의 과거를 알수록, 이웃의 위선과 위악을 고발해야겠다는 의무감이 강력해졌다. 이 책의 기록은 그 결과물이다. 제국주의 시대, 나치의 만행은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되는 추악한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픈 시기, 그 참혹한 역사의 뒷면엔 로마니가 있었다. 당시 유대인의 피해 사실과 저항의 활약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로마니의 기록은 찾기 힘들다. 그들을 외면한 것은 누구였을까, 이 책을 읽는 이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관용은 없고 편견뿐인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과 귀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화자는 과연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의 바람처럼 이 기록을 읽은 후 우리는 “진심으로 로마니를 위무하게 될”까. 「작가 노트」에서 김솔이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어쩌면 로마니의 역사가 우리와 전혀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는지 모른다. 베를린의 모든 로마니가 체포되어 공동묘지와 쓰레기 매립장에 강제로 수용되었던 그때, 일장기를 달고 1등과 3등으로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 두 명의 (우리나라) 선수는 패자의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니. 이 소설은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1937년 12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집시의 조국 건설’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이 단신 기사에는 조국을 되찾게 된 유대인 이야기에 이어 방랑의 민족이 무솔리니로부터 일정 지방을 국가 건설을 위해 제공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국만리의 이 소식이 식민지하의 국민들에게 어떤 희망을 품게 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는 작은 책 안에 거대한 서사를 담아 독자들을 압도하며, 그들의 이웃이었으나 그들을 외면했던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게 만든다. ◎ 본문 소개 로마니가 이웃에 미친 해악보다 오히려 이웃이 로마니에게 끼친 고통이 훨씬 컸지만 어떤 역사가도 그 진실을 가감 없이 기록하지 않았다. 로마니는 성서 밖의 오지로 추방되거나 성서 안에서 노예로 핍박받았고, 전쟁 중에 절멸 수용소에서 학살되기도 했다. 유대인도 이와 같은 처지였으나 신성한 책을 보관하고 꾸준히 읽은 덕분에 로마니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얻었다. 유대인의 시오니즘에 자극받은 퀴에크 가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더라면 로마니도 영광스러운 현재를 누리고 있을 것이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몹시 유감이다. (pp. 13~14) 로마니는 풍문에서 태어나서 풍문으로 사라지는 족속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망각하지만 금세 빈자리를 채워 넣는다. 그들의 역사는 실재(實在)보다도 더 길고 풍성하며,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한꺼번에 포함되어 있다. 굳이 각각의 함량을 따지자면 과거의 비중이 가장 낮고 미래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이는 사실보다 거짓이 많다는 뜻인데, 거짓이란 비록 현재까지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증명되거나 공리처럼 증명 없이 인정받게 될 진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근거 없는 거짓말이 훗날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p. 20) 역사에 가정을 매다는 행위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수백만 가지의 개연성이 작용한 결과이므로 그 사실을 수정하거나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p. 25) 단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잘못되는 순간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역사가 통째로 부정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에서 인과율을 따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은 단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p. 69) 절멸 수용소 안에서 로마니와 유대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유대인의 활약상은 널리 알려진 반면 로마니의 그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로마니는 수용소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절망과 대결했다. 그들은 거짓 희망에 쉽게 현혹되지 않기 때문에 자해와 가까운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전염병과 가뭄, 굶주림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은 그들이 나치의 수용소에서만큼은 거의 살아남지 못했던 까닭은 인간의 범죄가 자연의 섭리보다도 더욱 잔악하고 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치보다 나치의 부역자들이 더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나치를 찾아내고 없애는 건 쉽지만, 그들에게 부역한 뒤에 자신의 죄악을 숨긴 채 피해자들 사이에 숨어버린 자들을 없애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세계에서 로마니는 영원한 박해와 차별을 피할 수 없다. (pp. 72~73)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되자 유럽의 모든 나라는 승전국의 자격으로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챙겼다. 심지어 국가가 없던 유대인마저도 영토를 얻었으나, 로마니만큼은 보상은커녕 관심조차 받지 못하다가 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용서와 망각을 강요받았다. 통일된 언어와 종교가 없다는 사실보다 로마니의 미래를 걱정하고 비전을 제시할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 로마니를 유대인과는 정반대의 길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마니는 또다시 반세기 동안 굴욕과 압제를 견디면서 메시아를 기다려야 했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가 나타나 로마니 최초의 자치국을 유럽 안에 건립했을 때 비로소 자신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고 크게 기뻐하며, 세계 곳곳에서 축하 파티를 열고 수일 동안 춤추고 노래했다. (pp. 75~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