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형
김채형
평균평점
그 사막에는 야생화가 있다

<그 사막에는 야생화가 있다> 환상 속의 노스탤지어를 향해 가는 방랑자들의 여정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도 안주할 수 없는 자들의 흐느낌을 섬세하고 차분한 필치로 그려낸 김채형 소설집 ■ 본문 중에서 도시는 사람이 도저히 살 것 같지 않은 모래 벌에 마치 야생화처럼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글거리는 태양 볕 아래, 심한 탈수증으로 시달리는 사막 한가운데에 살아온 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민자들은 아닐까. ■ 서평 중에서 김채형의 작품들에는 가혹한 현실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환상, 오아시스가 있다. 이 오아시스는 작품 속 인물들의 에너지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사막과 같은 메마른 현실 속에서 환상은 인간의 삶을 지탱 해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다. 삶의 여정은 어쩌면 평생 이 오아시스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조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런 오아시스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야할 것이다. 김채형의 작품들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고통받는 타자의 상황을 고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김채형의 작품들은 조국을 떠난 자로서의 방황과 여성적 타자로서의 현실에서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자,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도 안주할 수 없는 자들의 흐느낌이다. ■ 작가의 말 어느덧 북국에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차츰 긴 잠에서 깨어나는 대지를 바라봅니다. 곧 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고 녹음이 우거질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봅니다. 제 마음은 사뭇 앞서갑니다. 이미 봄이 무르익은 듯이 설레기도 하고, 새삼스레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하니까요. 아마도 첫 소설집을 출간하게 되어서인가 싶습니다.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어긋나기만을 계속했던 제 삶 속에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꿈은 기어이 말 그대로 꿈으로만 끝나는가 보다고 여겼습니다. 늘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왔고, 지금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시린 응어리 하나 품고서 방황하는 삶이 제 인생이려니 여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제 안에 가득 고여서 저를 흔들어대는 아픔을 뱉어내지 않으면 우울하고 참을 수 없이 슬퍼져서 밤잠을 이룰 수 없었고, 가까스로 잠이 들어도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잠을 달아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써야 한다는 제 영혼의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제 안의 외침에 떠밀려서 뒤늦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지고, 휘어지고, 때론 꺾인 듯해서 아프기만 했던 시간들이 나를 운명처럼 글쓰기와 마주하게 만든 거였다고. 그렇게 만난 소설은 영혼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몸의 건강을 잃고 다시 몇 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힘든 투병을 하고 건강은 찾았지만, 책을 꼭 엮어야만 할까 하는 회의 속에서 그동안 쓰고 발표해온 원고들을 그대로 컴퓨터에 담아 들고 캐나다로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떠나와도 내 언어들은 나를 고향으로 되돌려놓곤 합니다. 글쓰기가 있는 한 나는 결코 떠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조심스럽게 제 글들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설익은 작품들을 내놓는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더 이상 밀밭은 없다

<더 이상 밀밭은 없다> 잃어버린 꿈들의 유실물을 찾아가는 긴 여정 머리에 서리가 내릴 때쯤 된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내가 살아온 삶의 질곡을 소설을 쓰면 몇 권을 될 것이다, 라고.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비슷한 삶을 산 것 같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가 자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우물 속 비밀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지문이 다르듯이 김채형 작가의 작품을 풀어가는 특유의 친화적인 문체와 작법도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지나치게 미학적으로 다듬지 않았으면서도 작품을 일다보면 마치 내 이야기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언젠가 매우 가깝게 지내던 최인호 작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남들은 내가 작품을 너무 쉽게 쓴다고 하는데, 나는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야.” 맞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김채형 작가도 분명 그랬으리란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밀밭은 없다』에서는 고향 친구와 사춘기 시절의 절망과 변해버린 고향, 일탈을 위한 여행, 캐나다에서 느끼는 고국에 대한 향수,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소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변신과 그를 지켜보는 아들의 불안함, 눈폭풍에 갇혀 새삼 뒤돌아보는 삶, 아내에게 쫓겨난 꿈을 잃은 가장, 두 번의 결혼생활을 실패한 어머니와 가출을 일삼는 아내를 버릴 수 없다는 막내외삼촌, 죽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누추한 삶을 반추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는 화자, 빛바랜 사진첩 같은 어린 시절 남자 친구와의 추억 등 10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김채형 작가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허상이나 겉멋에 치우치지 않고 진지한 자기 체험이나 때론 철저한 자기반성이나 회한들이 묻어나기에 그만큼 잔잔한 감동도 함께한다. 정말로 슬프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작가는 내면에 있는 활화산 같은 고뇌를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기에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영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