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밀밭은 없다> 잃어버린 꿈들의 유실물을 찾아가는 긴 여정
머리에 서리가 내릴 때쯤 된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내가 살아온 삶의 질곡을 소설을 쓰면 몇 권을 될 것이다, 라고.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비슷한 삶을 산 것 같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가 자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우물 속 비밀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지문이 다르듯이 김채형 작가의 작품을 풀어가는 특유의 친화적인 문체와 작법도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지나치게 미학적으로 다듬지 않았으면서도 작품을 일다보면 마치 내 이야기나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언젠가 매우 가깝게 지내던 최인호 작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남들은 내가 작품을 너무 쉽게 쓴다고 하는데, 나는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야.” 맞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김채형 작가도 분명 그랬으리란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밀밭은 없다』에서는 고향 친구와 사춘기 시절의 절망과 변해버린 고향, 일탈을 위한 여행, 캐나다에서 느끼는 고국에 대한 향수,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소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하던 아버지의 변신과 그를 지켜보는 아들의 불안함, 눈폭풍에 갇혀 새삼 뒤돌아보는 삶, 아내에게 쫓겨난 꿈을 잃은 가장, 두 번의 결혼생활을 실패한 어머니와 가출을 일삼는 아내를 버릴 수 없다는 막내외삼촌, 죽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누추한 삶을 반추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는 화자, 빛바랜 사진첩 같은 어린 시절 남자 친구와의 추억 등 10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김채형 작가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허상이나 겉멋에 치우치지 않고 진지한 자기 체험이나 때론 철저한 자기반성이나 회한들이 묻어나기에 그만큼 잔잔한 감동도 함께한다. 정말로 슬프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작가는 내면에 있는 활화산 같은 고뇌를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기에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영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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