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무한전생자라는 설정 때문에 일반적인 설정으로는 스토리의 진행이 불가능하다. 꿈이 있었으나 압도적인 시간의 흐름에 마모되어 사라지고 귀차니즘만 남은 주인공에게 한 인간의 한 번의 삶 속에서 등장할 법한 고난이라봐야 여태까지 수천 번도 더 겪어서 척 하면 해결 가능한 가벼운 해프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설정에서 뭔가 이야기가 만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작가는 무한전생 시리즈의 각 작품마다 다른 답변을 제시하는데, 여기서는 "주인공이 자기 신념 상 죽여서 치워버리는 게 불가능한 가족을 발암덩어리로 만들어서 투입한다"는 답을 선택한다.

그런데 솔직히 이 작품의 주인공 엄마나 동생은 다른 작품에 나왔으면 그 두 사람 때문에 이 책을 집어던지고 싶어질 정도로 극악한 발암물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이 작가가 그런 발암물질을 잘 굴려서 짜낸 스토리가 의외로 괜찮았기 때문이다. 내가 광악 작가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도 있어서 원래 5점짜리 글이지만, 엄마 때문에 별 반개, 동생놈 때문에 별 반개 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