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가까이 된 작품이라 글이 전반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강함. 문체가 낡아서 몰입하기 어렵고, 전래동화처럼 황당하거나 억지스러운 전개가 잦음. 우연이나 내기 등에 자주 의존하는 스토리, 선인이 악인을 제대로 응징하지 않는 바람에 동일한 악행이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전개가 특히 지루함을 불러일으킴. 상습 ㄱㄱ범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냥 보내주고, 독 먹이고 배에 불을 지르는 지독한 적과 불타는 배 위에서 사투 중에도 적이 화상 입을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려다가 적한테 되레 당하는 식. 심지어 그 적이 반성도 없이 악행 하다가 다시 위기에 처하자 또 살려주고 또 당함. 할 필요 없는 내기를 받아들이거나 뜬금없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다가 일이 꼬이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님. 특정 악역이 계속 등장해야 ㄱㄱ이나 연적 같은 자극적인 요소가 계속 제공되거나, 누가 어떤 정보나 물건을 가져야 사건이 일어날 수 있거나 누가 위기에 빠져야 그 에피소드를 늘여 쓸 수 있겠다 싶으면 저런 억지 패턴으로 디테일을 해결함. 각 무공에 대한 설정이 허술하고, 전투 결과가 억지스럽게 나오는 일도 잦음. 핍진성이나 개연성이 많이 부족함.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기대 했는데 그 시대에 쓰인 장르 소설 기준으로는 명작이고 현대적이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야 할 듯. 장르사적인 의의는 있겠지만, 요즘 봐도 완성도 높고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음. 기자 출신 작가답게 서술이 간결하다는 점은 장점. 일반 독자보다는 현대 무협의 토대가 된 소설을 확인해 보고 싶거나, 레트로를 즐기는 사람에게 추천 가능해 보임. 출판사 광고나 추억 보정된 리뷰는 반쯤 걸러야 하는 소설.



높은 평점 리뷰
로우 파워 무협+느와르+로드무비. 유명작이라도 유치하거나 허술한 무협 소설이 많은 데다가 무림사계라는 제목도 평작 느낌이라 큰 기대가 없었는데, 의외로 독특하고 탄탄한 재미가 있음. 고군분투 하는 주인공과 여러 인물이 얽혀서 사건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와중에, 날려버릴 조연은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전개도 매력적. 중반부 이후부터 좀 더 간결하게 쓰면 좋겠다 싶은 중언부언과 사족이 종종 있다는 것과 오픈 엔딩이라는 게 아쉬움.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꽉 닫힌 해피엔딩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만드는 작품.
문장 수준이나 스토리 전개 모두 괜찮아서 몰입도 잘 되고 재밌음. 회귀 후 심리 묘사가 아쉽고 정통 무협에 비해 무협 부분이 허술하긴 하지만, 스토리 전개가 시원하고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지나치게 유치한 상황이나 대사가 없다는 걸로 상쇄됨. 일관되게 표사와 표행에 집중한 것도 개인적으로 좋았음. 은둔 고수도 있는데 고수 표사 없으란 법 있나? 월급제 표사 아니라서 돈도 벌 만큼 벌고, 본인이 표사가 꿈이었다는데 뭐라 하는 건 이해가 안 감. 장원급제 했지만 관리 안 하는 것도, 뇌물과 아부가 필수인데다 정쟁으로 온 가족 목 날라가던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선택이라고 봄. 실제로 정쟁의 위험성을 이유로 중앙 관직 진출을 의도적으로 피한 가문들도 있었음. 장원 급제 에피는 고증이 좀 아쉽긴 한데 그건 별개의 문제이고 아무튼 일관되게 표사해서 오히려 신선하고 재밌었음. 무협은 용두사미 내상 잦은 장르인데,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보기 드물게 안정적인 전개와 마무리였다고 느낌.
같은 작가의 '무림사계'처럼 양각양도 여러 인물이 얽혀 좌충우돌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됨. 장르 소설인데 열린 결말을 반복해서 쓰는 게 작가의 단점이고, '협'이나 '선' 대신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의 교차 서사를 잘 쓰는 게 장점. 솔직하고 유치한 인간 내면에 대한 묘사가 웃음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