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가문의 딸, 엘리노어 타운젠트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줄곧 그리피스 공작의 후원을 받아왔다. 명분 모를 후원에 사람들은 엘리노어가 공작의 사생아인 게 틀림없다고 떠들어댔다. 급기야 공작은 장남 대릴에게 엘리노어와 1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않으면 공작위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대릴은 엘리노어를 찾아와 단 1년간의 계약 결혼을 제안한다. “아버지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당신만 없었다면 내가 이런 광대 꼴이 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차갑고도 오만한 남자였다. 대릴의 거짓된 부인으로 사는 동안, 그의 혀는 독 바른 칼날처럼 내내 엘리노어를 난도질했다. “진짜 공작부인이라도 된 양 착각하지 말고, 일 년 동안 죽은 듯이 살아. 나대지 말고.” 오로지 이 결혼이 끝나는 날만을 기다리며 참고 견뎠다. 그런데 왜, 단 한 번도 엘리노어의 편이었던 적이 없었던 그가 이제 와서 그녀를 붙잡는 걸까. ** “형식적인 결혼이면 된다고 한 건 바로 당신이에요. 애초에 결혼을 청한 것도, 일 년 후 이혼을 조건으로 하는 계약서를 가져온 것도, 싫다는 저를 선대 공작님에 대한 보은까지 거론하면서 억지로 설득시킨 것도 당신이라고요.” “……엘리노어. 그때는, 내가.” “공작가에 들어왔다고 해서 진짜 공작부인이 된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고 한 것도, 일 년 동안 죽은 듯이 살라고 한 것도, 실제로 내내 저를 없는 사람 취급했던 것도 바로 당신이에요.” “……” “타운젠트 가에서 혼자 살던 때보다 몇 배, 몇십 배는 더 외롭고 고독한 생활이었지만 참았어요. 약속이었으니까. 그게 선대 공작님에 대한 도리고 본의 아니게 당신에게 끼친 폐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래서 견딘 거예요. 딱 일 년이었으니까. 더는 참을 수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차분하게 대릴을 성토하는 그 말에는 엘리노어가 일 년 동안 제 안에만 꾹꾹 눌러 담았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 나가주세요.” “……” “안 나가시면 제가 나가겠어요.”
19금 피폐물 로맨스에 빙의해 버렸다. 그것도 인간과 마족의 혼혈인 남주를 실험체로 붙잡아 고문하는 악당 마법사의 딸로. 이대로는 꼼짝없이 남주 손에 죽을 판이라 남주가 각성하기 전에 그를 탈출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무사히 계획에 성공해, 이대로 그와 안전 이별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꼭 다시 만날 거라고 약속해. 어기면 죽는 거야. 너도, 나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버렸다. 그리고 7년 후. 다시는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클리드가 돌아왔다. “내 눈을 속이고 싶었다면, 하다못해 변장이라도 했어야지.” 클리드가 손등으로 내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와 직접 피부를 맞닿은 부분이 마치 전기가 오르듯 찌르르했다. “7년 동안 단 하루도 네 얼굴을 잊어본 적이 없어. 더는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
소설 속 미의 여신 아스릴리엔에 빙의해 버렸다.남편인 명계의 왕, 데스타니스 몰래 바람을 피우다가 걸려 영원히 감옥에 갇히고 마는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다.내 꿈인 무사안일하고 평온한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데스타니스와 원작 여주, 치아넨 공주를 맺어주는 수밖에는 없다.마침 원작으로부터 10년 전에 빙의했으니, 인간으로 변신해서 아직 어린 치아넨의 시녀로 들어간 뒤 조기교육으로 데스타니스 같은 남자가 취향이 되도록 만들어 줘야지!……라고 생각했는데……“잠깐만요, 공주님. 제 얘기 들으신 거 맞아요?”“그럼. 데스타니스가 그렇게 잘생겼다고? 근데 아무리 잘생겨봤자 우리 피나만 하겠어?”“네? 저요? 아니, 저는 여잔데…….”“여자고 남자고가 무슨 상관이야. 세상 제일 잘생기고 예쁜 거 우리 피나가 혼자 다 하는데.”원작 여주가 남주가 아니라 나한테 단단히 반한 눈치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아넨의 오빠, 솔라시안 왕자까지 나한테 집착하는데……“너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어. 내게 주어질 왕위조차도.”야, 뭐라는 거야.원작에서 너랑 바람이 났다가 무슨 사달이 벌어졌는지 알아?이런 판국이니 데스타니스조차 벌써부터 내 외도를 의심하며 인간계에 올라올 기세다.“인간계에서 뭘 하든 상관없지만, 그대가 앞으로 내 반려가 될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군.”제발 좀, 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라고!#책빙의물 #미의여신여주 #무뚝뚝하지만알고보면순정파남주 #주신물 #모두가여주를덕질 #살짝역하렘
“변명할 기회를 주지. 어디 한번 말해 봐.” 앞에는 남편을, 뒤에는 불륜남을 둔 외도 현장. 이게 연극이라면 바람난 아내에 빙의한 나는 단독 조명을 받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당신이 오길 기다렸어요, 여보.” “…뭐?” “저자를 구속하세요. 절 유혹해 공작가의 기밀을 빼내려 한 첩자니까.” 최악의 판을 엎을 최고의 명장면이 될 예정이었으므로. ** 줄곧 아내를 방치했던 에단과, 애정에 목말라 외도를 택한 카미유. 미래를 바꿔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건 피했으니, 남은 건 이혼뿐이었다. 그러나 꽃길 응원은 못 해 줘도 환영해야 할 남편이, “이혼은 안 돼.” 아니, 남보다 못한 사이였잖아? 다 타 버려 재만 남은 관계… 아니었나?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 봐. 정말로 당신은 마음이 없는 건가?” 불현듯 튄 불씨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졌다. “어디 지금 확인해 보자고.” 당장이라도 다시 타오를 것처럼.
꿈인 줄만 알았다. 남몰래 짝사랑해온 율리안과 결혼하게 되다니, 너무 행복해서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율리안이 카린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한 건 청렴하고 고매하기로 이름난 판츠너 백작가의 평판뿐이라는 사실도. 그러니 율리안이 제게 줄곧 무관심해도, 정식으로 청혼도 하지 않아도, 하인 편으로 보낸 약혼반지가 손가락에 안 맞아도,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아내가 될 수 만 있다면 모두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단 일주일을 남겨둔 시점, 오빠가 거액의 도박 빚을 남기고 잠적해버렸다. 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작위와 저택은 이름도 모르던 먼 친척에게 넘어가 버렸다. 이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약혼녀가 버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행복했어요. 이 반지를 끼고 있는 동안…… 아마 나중에 누구에게 무슨 물건을 받더라도, 절대 그 정도로 기쁘지는 않을 거예요.” 있는 힘껏 눈물을 참으며 반지를 돌려준 게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분명 다시는 율리안을 보는 일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준 반지를 끼고 있는 동안 행복했다면서. 다른 누구에게 뭘 받더라도 그 정도로 기쁠 일은 없을 거라며. 그건 거짓말이었나?” 율리안은 카린의 손목을 붙잡은 채로 물었다. 그의 그림자가 카린의 작은 몸을 온전히 다 덮고 있었다. “대답해 봐. 당신이 좋아하는 건 나잖아.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