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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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사자의 시간

<어린사자의 시간>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청소년들과 엄혹했던 80-90년대를 꿋꿋하게 살아왔던 학력고사 세대를 위하여 작가가 건네는 따스한 위로가 위트로 반짝이는 소설 1990년, 교복자율화 시대 대학입학을 위한 사상최대의 경쟁률과 암울한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험난한 정글 한복판 같은 고등학교에서 평범한 초식동물 세 마리의 좌충우돌 정의 사수 생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청소년소설의 주인공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학교짱, 일진으로 불리는 반항아. 둘째는 모범생으로 불리는 공부를 잘 하는 상위권. 화제가 된 드라마 SKY캐슬에서도 상위권을 다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범한 99%가 만들어가고 있다. 권오단 작가의 『어린 사자의 시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99%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힘도 약하고 성적은 하위권,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힘없는 초식동물들이며 상위 1%가 아닌 이 땅의 대다수 평범한 아이들이다. 무한경쟁시대에 뒤쳐져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할 것인지 걱정하며 고뇌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임란전록

<임란전록>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과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이유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임란전록』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용인술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유성룡과 병란에 앞서 부국강병을 강조한 이율곡을 만나야 할 시점이 무르익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 북방에서는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족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남방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00여 년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서로 나누어진 당쟁의 그늘은 조선사회를 약화시키고, 끝내는 조선 백성들을 병란의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일에는 반드시 전조가 따르기 마련이다. 임진왜란도 이탕개의 난에서 우리는 그 징조를 찾아볼 수 있다. 이탕개의 난을 통해 이율곡은 조선이 안고 있는 심각한 폐단을 절감하고는 선조에게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들을 쏟아놓지만 그의 정책은 당파에 함몰되어 폐기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탕개의 난에 등장하는 신립, 이순신, 김시민과 같은 젊은 장수들과 휴정, 유정 등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큰 몫을 담당하게 된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원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인물이 유성룡이었고, 이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가능하였다. 당시 병조판서로 이탕개의 난을 진압했던 이율곡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임란전록』은 유성룡이 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이 어디에서 왔는지, 『징비록』을 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역사소설로 그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백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게 되는 건 변함이 없다.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를 우리는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임란전록은 이러한 물음에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저자는 임란전록을 저술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서인인 이율곡과 동인인 유성룡.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실제로 친분이 두터웠다. 흔히들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반대한 사람이 유성룡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는 다르다. 이율곡은 서인이었지만 당파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톨이 신세였다. 유성룡은 동인이지만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율곡과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시비로 다투지 않고 정책으로 다투었다. 그것은 합리적 소통이었다.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기록물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에 일어난 이탕개의 난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선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을 극복하게 되는 요인도 이탕개의 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임란전록’은 징비록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당파의 분쟁 가운데서 신념을 지키며 죽기 전까지 나라의 위급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바쳤던 이율곡의 삶은 오늘날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병란의 위기에서 파격적인 정책으로 나라를 구원했던 유성룡의 사상 또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에 큰 병화가 생겼을 때, 몸을 바쳐 싸웠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승인 대주와 범이, 임백손과 같은 민초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몰락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기해동정록

<기해동정록> 세종대왕이 정벌한 조선의 땅, 대마도 우리가 해양으로 진출하여 쾌거를 이룬 300일 간의 이야기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세종대왕 즉위 초기에 단행한 대마도 정벌은 대마도가 경상도의 속주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 외에 세종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부국강병 정책과 민본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단초가 된다. 세종은 아버지 태조를 몰아내고 힘으로 정권을 잡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태종과는 달리 문경무위의 치국원리를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다. 따라서 대마도 정벌은 군사적 토벌 이외에 상반된 정치론을 가진 두 사람의 정치적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세종실록》·《지봉유설》·《택리지》·《해유록》 등 많은 고문헌에는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에도 대마도의 소유권은 문제가 되었다. 1948년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국회는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만들었다. 지금 대마도는 어떠한가? 이 책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2015년 4월 7일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외교백서격)'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한 시점에 우리의 영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덤으로 세종과 태종의 치국이념과 국정운영에 관하여 대비되는 점들을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다. 문헌으로 살펴본 우리 땅 대마도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鷄林, 신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동국여지승람』 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 땅이다. 이것은 문서에도 기록돼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 데다 바다 한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들 나라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 『세종실록』 대마도는 신라에 속했던 땅인데 언제부터 왜놈들이 차지했는지 알 수 없다. 세종 기해년 5월에 왜선 30여 척이 비인·해주 등지에 노략질하러 왔었다. 임금께서는 이틈을 타서 무찌르시려고 영의정 유정현을 도통사로, 최윤덕을 도절제사로 명하시고, 몸소 한강까지 납시어 전송하셨다. 그리고 경상·전라·충청도 등지의 병선 227척에 17,000명을 내어 65일치의 양식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대마도의 두지포에 다다랐다. 적들은 모두 도망갔으므로 적선 129척을 빼앗고, 적의 소굴 2,000여 곳을 불태우고 적의 우두머리 200여 명을 목 베었다. 이 정벌은 5월 스무 하루에 출정하고 6월 열 이레에 닻을 올려서 초사흘에 돌아왔다. 『지봉유설』 옛날에 장헌대왕(세종)이 장수를 보내어 대마도를 토벌하였으나 관원을 두어 지키지 않고 다시 도주에게 돌려주었다. 이 섬은 원래 왜국에 속한 것이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있어서 왜국을 빙자하여 우리에게 요긴한 체하고 또는 우리를 빙자하여 왜국에게 중하게 보이는 박쥐 노릇을 하여 그 이익을 취하고 있으니 마땅히 토벌하여 복종케 하는 것이 상책이다. 『택리지』 대마도는 조선의 한 고을에 지나지 않는다. 태수가 조선 왕실로부터 도장을 받았고, 조정의 녹을 먹으며, 크고 작은 일에 명을 청해 받으니 우리나라에 대해 번신의 의리가 있다. 『해유록』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교과서가 15종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세종이 정벌한 대마도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015년 4월 7일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2015년판 '외교청서(외교백서격)'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외무성이 작성한 외교청서는 독도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비추거나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기술을 담았다. 또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은 현행 역사·공민·지리 교과서 18종 중 모두 9종에 들어가 있지만 이번 검정을 통해 15종(역사 5종·공민 6종·지리 4종)으로 늘어났다. 《동국여지승람》·《세종실록》·《지봉유설》·《택리지》·《해유록》 등 많은 고문헌에는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에도 대마도의 소유권은 문제가 되었다. 1948년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국회는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영토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안용복

<안용복> 안용복은 어떤 인물인가? 『성호사설』에는 동래부 수군에 예속된 전함의 노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관에 자주 드나들어 일본말을 익혔으며, 1693년(숙종 19년)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일본 어민이 침입하자 이를 막다가 박어둔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이때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았으나 귀국 도중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에게 서계를 빼앗겼다. 같은 해 9월 대마도주는 예조에 서계를 보내 울릉도(일본명―다케시마竹島)에서 조선 어민의 고기잡이를 금지시킬 것을 요청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히고 외딴 섬에 왕래를 금지하는 공도정책(空島政策)에 일본도 협조할 것을 요청한 예조복서(禮曹覆書)를 보냈다. 1696년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다시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독도(일본명―마쓰시마松島)까지 추격하여 영토 침입을 꾸짖었으며 스스로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兩島監稅官)이라 칭하고 백기도주로부터 영토 침입에 대한 사과를 받고 귀국했다. 귀국 후 사사로이 국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할 위험에 처했으나 영의정 남구만의 도움으로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 1697년 대마도주가 울릉도가 조선땅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보냄으로써 조선과 일본 간의 울릉도를 둘러싼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역사소설 안용복 안용복의 도해(渡海)는 대마도주의 오랜 흉계를 세상에 드러낸 하나의 사건이었다. 첫 번째 도해 때 대마도주는 안용복이 막부로부터 받아온 문서를 압수하였고, 외교적으로 노련한 다다 요자에몽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몇 차례 협상 끝에 외교 분쟁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일본은 1696년 1월 28일 막부의 중신인 네 명의 로주들이 서명하여 울릉도와 자산도 도해를 금지하는 봉서를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 어부들의 어로 행위가 그치지 않자 안용복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시금 도해를 결심하게 된다. 태종 13년1407 3월 15일 대마도 수호(守護 종정무宗貞茂, 소오 사다시게)가 평도전(平道全, 히라미치 젠)을 보내와 토물(土物)을 바치고, 잡혀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이때 종정무가 울릉도에 여러 부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고자 한다는 청을 하였다. 이는『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 독도 관련 자료이다. 히라미치 젠은 태종의 호위무사로서 오랫동안 대마도주 소오 사다시게의 밀정 노릇을 하다가, 세종 1년1419년 대마도 정벌 때 죄가 발각되어 귀양을 간 인물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조선이 개국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정치·문화·군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던 조선 초기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자국 영토로 단호히 선포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왜인들은 두 섬의 이름을 다케시마와 마쓰시마로 부르며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려 했다. 안용복의 도해는 이러한 왜인들의 오랜 흉계를 세상에 드러낸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1693년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안용복은 에도 막부가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와 독도 도해를 금지한 문서를 요나고 번주로부터 받았지만,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주에게 압수당하고 말았다. 대마도주는 외교적으로 노련한 다다 요자에몽(橘眞重)을 파견하여 울릉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기 위하여 몇 차례의 협상 끝에 외교 분쟁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섬의 소유권을 놓고 전쟁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1696년 1월 28일, 막부의 중신인 네 명의 로주(老中막부 및 번에서 정사를 돌보는 직책)들이 서명하여 울릉도와 독도 도해를 금지하는 봉서를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 어부들의 어로 행위가 그치지 않자 안용복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금 도해를 결심한다. 1693년의 첫 번째 도해가 일본 어부들에게 끌려간 형태라면, 1696년의 두 번째 도해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찾아간 것이다. 안용복의 두 차례 도해로 말미암아 조선 조정은 외교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소유권을 분명히 했다. 이듬해 일본 막부는 울릉도 근처의 출어를 금지하겠다는 사실을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 측에 공식적으로 통보하였고, 이로써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분쟁은 종결되었다.

합본 | 책사(1권~3권) (전3권)

<합본 | 책사(1권~3권) (전3권)> 역사적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제왕의 그림자_『책사(策士)』 위태로운 천하를 능히 평안하게 할 만한 이는 누구인가? 천하를 위태로움에서 구하는 자는 천하백성의 평화를 얻고, 천하의 근심을 없애는 자는 천하의 즐거움을 맛볼 것이며, 천하의 화(禍)를 막는 자는 천하의 가장 큰 행복을 누릴 것이다. 주무왕(周武王)은 강태공을 얻어서 천하를 안전하게 하였고, 한고조(漢高祖)는 장자방을 얻어서 천하의 근심을 없앴다. 강태공과 장자방이 누구인가? 바로 하늘이 낸 책사(策士)였다. 역사는 사회·문화적 가치나 경제적 삶의 질을 기준으로 당시의 정권을 평가하지만, 사실 그것은 통치자의 지도력보다는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의 의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맞다. 결국,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통치자가 어떤 인물을 기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래서 나라가 어려울수록 앞날을 예견하고 지혜와 지략을 겸비한 책사가 나타나길 많은 백성들은 염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격변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책사들의 활약은 중국의 역사와 고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주무왕의 태공망 여상, 유방의 장량, 항우의 범증, 조조의 순유, 유비의 제갈량, 손권의 주유 등, 한 나라의 통치권자에게는 무력을 아우를 줄 아는 뛰어난 장수도 있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울 줄 아는 책사가 무엇보다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난세의 중심에서 고독한 리더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책사들은 역사적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제왕의 옆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사나이의 꿈을 좇는 자!_전략가의 리더십 소설 『책사』는 명나라의 시조인 홍무제가 명을 건국한 이후, 제2대 황제 건문제가 천자가 된 1399년(건문 1년 6월)부터 제5대 황제 선덕제가 한왕 주고후의 반란을 평정하는 1426년(선덕 1년 8월)까지, 27년간의 역사가 배경이 된다. 후일 영락제가 되는 연왕이 조카인 건문제의 견제로 자신의 지위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깨닫고 3년간의 내란(정난의 변)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가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고, 손자인 선덕제가 한왕의 반란을 평정하며 권력을 잡기까지 명나라 역사상의 부흥기인 인선의 치세를 주도했던 책사 목풍아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이다. 태평성대의 꿈을 좇아 세상 속으로 뛰어든 목풍아는 위험천만한 도박으로 영락제의 신임을 얻는 데에 성공하지만 영락제가 신임하는 환관 정화와 군사인 도연의 눈 밖에 나고 만다. 각기 다른 주군을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책사들과의 치열한 권력암투와 정적들의 모략 속에서 위기를 벗어나 승기를 잡아가는 목풍아의 지략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인재를 얻기 위한 용인술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 사랑과 우정의 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물러설 때를 알아 자신의 몸을 온전히 했던 처세술 역시 현대인이 반드시 알아야할 덕목이 아닐까? 소설 『책사(策士)』는 명초(明初) 혼란기의 상황을 알기 쉽게 그려놓았을 뿐 아니라 위정자들의 정치적 처세와 지도자의 리더십까지 보여주며, 한 글자도 놓치기 어려운 빠른 전개로 장편의 단점을 보완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책사 1

<책사 1 > 역사적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제왕의 그림자_『책사(策士)』 위태로운 천하를 능히 평안하게 할 만한 이는 누구인가? 천하를 위태로움에서 구하는 자는 천하백성의 평화를 얻고, 천하의 근심을 없애는 자는 천하의 즐거움을 맛볼 것이며, 천하의 화(禍)를 막는 자는 천하의 가장 큰 행복을 누릴 것이다. 주무왕(周武王)은 강태공을 얻어서 천하를 안전하게 하였고, 한고조(漢高祖)는 장자방을 얻어서 천하의 근심을 없앴다. 강태공과 장자방이 누구인가? 바로 하늘이 낸 책사(策士)였다. 역사는 사회·문화적 가치나 경제적 삶의 질을 기준으로 당시의 정권을 평가하지만, 사실 그것은 통치자의 지도력보다는 그를 보좌하는 참모들의 의해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맞다. 결국, 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통치자가 어떤 인물을 기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래서 나라가 어려울수록 앞날을 예견하고 지혜와 지략을 겸비한 책사가 나타나길 많은 백성들은 염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힘과 힘이 충돌하는 격변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책사들의 활약은 중국의 역사와 고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주무왕의 태공망 여상, 유방의 장량, 항우의 범증, 조조의 순유, 유비의 제갈량, 손권의 주유 등, 한 나라의 통치권자에게는 무력을 아우를 줄 아는 뛰어난 장수도 있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울 줄 아는 책사가 무엇보다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난세의 중심에서 고독한 리더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책사들은 역사적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제왕의 옆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사나이의 꿈을 좇는 자!_전략가의 리더십 소설 『책사』는 명나라의 시조인 홍무제가 명을 건국한 이후, 제2대 황제 건문제가 천자가 된 1399년(건문 1년 6월)부터 제5대 황제 선덕제가 한왕 주고후의 반란을 평정하는 1426년(선덕 1년 8월)까지, 27년간의 역사가 배경이 된다. 후일 영락제가 되는 연왕이 조카인 건문제의 견제로 자신의 지위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깨닫고 3년간의 내란(정난의 변)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가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고, 손자인 선덕제가 한왕의 반란을 평정하며 권력을 잡기까지 명나라 역사상의 부흥기인 인선의 치세를 주도했던 책사 목풍아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이다. 태평성대의 꿈을 좇아 세상 속으로 뛰어든 목풍아는 위험천만한 도박으로 영락제의 신임을 얻는 데에 성공하지만 영락제가 신임하는 환관 정화와 군사인 도연의 눈 밖에 나고 만다. 각기 다른 주군을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책사들과의 치열한 권력암투와 정적들의 모략 속에서 위기를 벗어나 승기를 잡아가는 목풍아의 지략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인재를 얻기 위한 용인술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 사랑과 우정의 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물러설 때를 알아 자신의 몸을 온전히 했던 처세술 역시 현대인이 반드시 알아야할 덕목이 아닐까? 소설 『책사(策士)』는 명초(明初) 혼란기의 상황을 알기 쉽게 그려놓았을 뿐 아니라 위정자들의 정치적 처세와 지도자의 리더십까지 보여주며, 한 글자도 놓치기 어려운 빠른 전개로 장편의 단점을 보완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합본 | 전우치 (전 3권)

<합본 | 전우치 (전 3권)>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간 異人 전우치 "저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였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윗자리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라리며 구렁이 같은 욕심을 부리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 전우치는 중종 때의 인물로 도술에 능하고 시를 잘 지었는데 반역을 꾀한다 하여 1530년경 잡혀 죽었다고 한다. 도가의 이단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자주 일컬어지고 전설의 주인공으로 부각된 것이 〈조야집요 朝野輯要〉, 〈대동야승 大東野乘〉, 〈어우야담 於于野談〉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전우치』는 이러한 실재 인물인 전우치를 소재로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과 풍부한 사료史料, 재기 넘치는 한문시의 묘미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홍길동을 잇는 의적 전우치 "재물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성들의 피와 땀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가 따라서 부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백성을 다스림에 백성을 인도하여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되도록 할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을 도랑으로 인도하면 물 스스로가 웅덩이를 채워가며 멀리 흘러가는 것과 같은 것이니 지극한 순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읽는 역사소설 전우치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개성 부근의 산골마을 청하동. 어느 날 관군이 나타나서는 도적떼인 줄 알고 맞서 싸우려는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자신들의 장계를 부풀리는데, 그들의 속셈은 당시 정치적 야욕을 앞세워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던 유자광에게 공적을 세워 한 자리라도 얻어볼 심산이었으니…… 조선 건국 이후 집권세력인 훈구파에 대응해 신진사류가 15세기 후반 중앙정계에 진출한다. 이 사림파가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성종 연간에 김종직·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 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활동하기 시작할 때였다. 사림파는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활동을 전개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사상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러나 김종직이 사초로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무오사화에 의해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관직을 마다하고 무풍을 지키며 야인으로 살고자 한 전유선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전우치. 그러나 그의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부모는 물론 자신의 신분도 모른 채 심마니집에서 산골 초동으로 살아가던 전우치는 세상구경이나 할 겸 방방곡곡을 돌게 되고,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해적들의 약탈 속에 힘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의 고단한 인생살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의적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우리나라 도맥의 실질적인 계승자이자 연구가인 전유선은 여러 방법으로 도맥을 잇고자 노력하지만 시대의 역풍을 맞아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쫓겨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급기야 사화에 연류되어 귀양살이를 갔다가 겨우 목숨만 부지해 집으로 돌아온 전유선은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관군에 의해 쑥대밭이 된 마을과 집을 보게 된다. 더욱이 자기 자식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우직한 하인이자 제자인 실권이의 도움으로 쌍둥이 중 딸만 데리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황급히 집을 떠나야 하는데…….

변란 (상)

<변란 (상)> 진정한 혁명의 주역, 민초들의 이야기_『변란變亂』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뒤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동서로 나뉜 당쟁의 한가운데서 병약해진 조선사회를 염려했던 이이는 임란과 호란을 미리 내다본 선각자였다. 그러나 그의 예리한 혜안만으로 조선을 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위대한 왕이나 선비, 그리고 영웅들만이 나라를 걱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많은 민초들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그들의 목숨을 바쳤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소설 『변란變亂』은 기록 역사를 대변하는 영웅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대주 스님과 범이, 그리고 임백손과 같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변란變亂』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여 년 전, 이탕개의 난을 통하여 바라본 조선사회의 현실을 그린 작품으로, 디지털작가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역사소설 『난亂』을 새롭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의 곳곳에서는 자발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을 일으켰던 농민들뿐만 아니라 조선을 조국으로 삼고 있는 모든 백성들은 가난하고 고난의 찬 삶 속에서도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하지만 중앙에서는 제대로 된 국방정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변해가는 동양의 국제정세를 명(明)나라와의 친선관계만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또한 인접국가인 일본이나 대륙 여진족의 정치적 변동이나 사항을 구체적으로 탐지하려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도 당파적인 엇갈림에 치우쳐 상반된 내용으로 더욱 혼란으로 치닫게 되었다. 『변란變亂』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나라를 걱정했던 이이(李珥)와 같이 나라를 걱정했던 민초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한반도 안에서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난(亂)에서도 질펀한 함경도 사투리와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투박함, 그리고 익살스러운 상황 묘사들로 하여금 울고 웃고, 때로는 가슴 아픈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통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현 대한민국과 우리의 모습을 한 번쯤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나라에 변란이 생겼을 때 몸 바쳐 싸워야 했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