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적에게 손속이 없고 악랄하지만 제 사람은 제대로 챙기는 모습에서 적어도 협객이리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 늘 가족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귀를 붉히던 걸 보고 사람 새끼라곤 생각했는데, 갑자기 중반부에서 역겨움의 정점을 찍더니 그 뒤로 행보가 지나치게 고약하다. 어차피 주인공이 마교니까 역겨우면 어떻냐고들 하는데, 그럼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친놈인지 제 사람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따뜻한 놈인지 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피도 눈물도 없는 게 역한 것이 아니라, 둘 다 하려니까 역한 것이다. 중반부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의식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서 신의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현경에 오르고 마침내 신의를 찾는다. 주인공은 신의에게 충성을 받아내는 대가로 한 가지 부탁을 받는다. 수적에게 납치된 신의의 손녀를 구하는 일이었다. 주인공은 신의의 손녀를 구하러 수적 무리에 쳐들어가 그들을 몰살하지만, 사실 손녀는 납치된 뒤로 수적 부대장과 사랑에 빠져 이미 아이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신의의 손녀는 남편을 해치고 무리를 몰살한 주인공을 강하게 거부하고 협박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그대로 필요한 정보만 빼간 뒤에 그녀와 수적 부대장을 죽이고, 그들의 아이를 빼내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신의에게 손녀가 불행히 죽었다고 거짓 보고를 한 뒤에 증손녀를 안겨준다. 그 뒤에 신의는 주인공을 돕기 위해 협조한다. 이 일은 결국 주인공이 자기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맡은 일에 본인 감정을 못 이기고 남의 가족을 무참히 죽여버린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물론 주인공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의견도 있다. 나노머신은 신의의 손녀를 보고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해석했고, 그녀가 수적을 옹호하고 두둔하며 주인공을 협박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입장에서 봐도 그녀가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여태껏 보여준 잔인한 모습은 적어도 복수라는 명분이 있었고 마교를 위한다는 대의가 있었지만, 여기서부턴 주인공이 그냥 자기 성미에 안 맞으면 막 나가기 시작해서 더 읽기 힘들었다. 본인도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알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기네 사람들한테 잘해줄 수 있다는 게 모순이었다. 일단 정파든 사파든 마교든 다 집어치우고 무릇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다른 이의 사랑을 보고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는데, 어째 주인공은 사랑 속에서 배운 게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작가의 실제 깨달음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부턴 사족이다. 나는 자신의 글을 사랑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꼭 작가의 생각이 읽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한중월야 작가도 그러하다. 오만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 통찰로 보건대 한중월야 작가는 선한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정사정 없고 무자비한 것을 더 좋아한다. 그 속에서 무(武)가 주는 희열과 실리는 충분히 생각한 것 같은데, 협(俠)이 주는 정열과 의리는 그렇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작가가 협에 대해 깊게 생각해봤다면 그걸 작품에 녹여내는 법을 알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노마신을 적었을 때 작가는 전혀 깊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배경이 마교인 걸 감안하여 점수를 후하게 준다. 아무래도 옆동네 화산파 쓰레기보다는 낫다. 뭐 주인공이 이중적이라고 해도 배경이 화산파는 아니라서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다. 근데 피도 눈물도 없는 미친 놈인지, 제 사람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따뜻한 놈인지는 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요즘 무협 작가들은 이거 선택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주인공이 패작하려고 작정했는데 무심코 저지른 일이 잘 풀려서 미친 캐리를 해버리는 작품. 주인공의 능력 자체는 상위권 정도인데 운이 너무 좋아서 최상위권 수준으로 결과를 낸다. 계속 이 패턴으로 진행되는데 필력도 좋고 등장인물도 매력적이라서 꽤 읽을 만하다. 하지만 작품이 전체적으로 고점에서 웃도는 것과 별개로 전개가 단조로워서 포텐셜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 ※ 70화 후기 장점 1. 훌륭한 기본기 전개, 설정, 세계관, 필력 중에서 특출나게 뛰어나다고 할 구석은 없지만 적어도 평균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된다. 그나마 주인공의 행운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까워서 개연성이나 핍진성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이 부분은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서 충분히 개선될 수 있을 것 같다. 2. 매력적인 등장인물 모든 등장인물이 매력적이다. 작품을 굴리기 위해 등장인물을 만들어낸 여타한 작가들과 달리, 등장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적은 듯한 작가의 애정이 돋보인다. 특히 히로인이 매우 귀엽다. 표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슴팍을 겨우 넘는 아담한 키라고 한다. 단점 1. 비교적 약한 캐빨 원래 같으면 그다지 단점이라고 볼 수도 없는데, 워낙 캐릭터가 잘 만들어져서 비교적 활용이 안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부분도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서 충분히 개선될 수 있을 것 같다. 2. 전체적으로 느린 진행 흥미로운 설정은 많은데 떡밥이 안 굴러간다. 주인공이 가진 행운의 출처, 마법의 원리, 이단의 존재, 검술 등 여태껏 나온 건 많은데 한 번도 비중 있게 다뤄진 적이 없다. 아예 끝까지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용의 양은 많은데 꼭 중요한 내용의 설명은 쏙 빠져서 마치 코난을 보는 것만 같았다. 3. 노성장 주인공 주인공이 성장하지 않는다. 성장 이벤트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억지로 안 보여주는 느낌마저 들 정도. 물론 주인공은 성장할 필요가 없을 만큼 특정한 부분에서 충분히 유능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장이 그나마 원패턴 전개를 환기하는 요소일 텐데, 주인공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작품이 더 쉽게 질리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4, 원패턴 가장 심각한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라면이 아무리 맛있어도 삼시세끼 라면만 먹는다면 질리는 게 당연하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높은 평점 리뷰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결론을 운명애와 정반대로 해석한 소설. 주인공이 영원회귀를 고통으로 여기고 이러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를 궁구하며, 과거의 행복에 얽매이는 것이나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의 결정을 더 강조한다. 해당 사상은 논어의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와 부처의 유언이었던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 언급되는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동시에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더 나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부분은 고통 속에서 인연의 무상함을 깨닫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간 주인공과 인연에 집착하며 현재를 장난감처럼 여긴 미래왕의 대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가치관은 곧 세계관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운명이 실존하는 세계관에서 절대적인 삶의 관점이 팽배한 가운데, 삶을 하나로 정의하지 않는 주인공을 통해 끊임없이 상대적인 삶의 관점이 제시된다. 삶은 운명이 아니라 그저 그냥 찾아오는 불행과 행복이 우연히 겹친 결과일 뿐이라는 것. 삶은 곧 기적! 이것은 기적이 운명을 넘는 이야기다.
소년의 삶은 그저 돛단배였다. 결국 바람이 나부끼는대로 항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끝에 도달한 곳이 어딜지는 더욱이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돛을 떼고 노를 저었다. 결국 자기 발로 감싸안던 세상을 떠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고 전사로서 어른이 되었다. 그 과정이 시리고 아플지언정 알을 깨고 나온 자만이 진정한 세상을 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도...
본디 협(俠)이란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챙기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고, 무(武) 역시 사람을 죽이는 기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道)를 갈고 닦는다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마치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처럼.